올해 들어 중소형 건설사들의 폐업이 잇따르는 가운데 중견 건설사인 태영건설이 기업 구조조정에 돌입할 거란 소문까지 나돌자 건설업계에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앞서 3, 4년 동안 부동산 호황에 기대어 아파트 수주를 늘리면서 발행한 프로젝트파이낸싱(PF) 보증서가 시장 침체기에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
17일 한국신용평가(KIS)에 따르면, 올해 9월 말 기준 KIS 투자등급을 보유한 국내 건설사 16곳의 PF 보증 규모는 28조3,000억 원으로 2020년(16조1,000억 원)보다 75% 급증했다. 건설사의 PF 보증 규모는 글로벌 금융위기 시기였던 2009년 25조 원으로 정점을 찍고 줄곧 하락하다 2020년 이후 주택시장 호황기와 함께 다시 급증했다.
PF는 아파트·주상복합 등을 짓고 미래에 들어올 분양수익을 담보로 금융기관에서 사업비를 빌리는 금융기법이다. 다만 대출을 받는 주체는 전문 시행사(사업추진)지만, 건설사(공사 수주)도 리스크를 어느 정도 떠안는다. 금융사가 건설사에 일종의 연대보증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를 건설사 신용보강이라고 하는데, 연대보증, 채무 인수, 책임분양처럼 형태는 다양하다. 분양에 실패해 시행사가 대출금을 갚지 못할 경우 건설사가 대신 빚을 떠안거나, 설령 공사비를 못 받아도 건물을 100% 완공하겠다는 약속이다. 이처럼 PF 보증서는 어느 순간 빚으로 바뀔 수도 있는 만큼 건설사 입장에선 우발채무인 셈이다. 실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PF 보증 여파로 40여 곳의 건설사가 줄도산하기도 했다.
부동산 PF 보증은 주택 경기가 호황일 땐 문제 될 게 없지만, 지금처럼 원자잿값 급등, 분양경기 부진 등 건설산업 환경이 나빠지면 얘기가 달라진다. 최근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부동산 PF를 우리 경제의 취약요인으로 꼽고 선제 대응을 예고한 배경이다.
9월 말 기준 전 금융권의 부동산 PF대출잔액(금융감독원 집계)은 134조3,000억 원으로 2020년 말(92조5,000억 원)보다 44% 급증했다. 같은 기간 연체율은 0.55%에서 2.42%로 4배 넘게 치솟았다. 돈을 빌린 시행사들이 금융권에 제대로 대출금을 갚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시행사가 돈을 못 갚으면 이 부담은 보증서를 끊어준 건설사로 고스란히 이전된다.
최근 태영건설이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설에 휩싸인 배경도 이와 무관치 않다. KIS 12월 보고서에 따르면 태영건설의 PF 우발채무 규모(별도기준)는 3조5,000억 원 수준으로 자기자본의 3.7배에 이른다. 워크아웃은 채권단 동의를 얻어 법에 따라 인력 감축·자산 매각 등과 같은 구조조정 절차에 착수하는 절차다. 대신 채권단으로부터 만기 연장이나 추가 대출 등의 금융지원을 받아 경영정상화를 도모할 수 있다.
태영건설은 워크아웃 가능성을 일축하고 있지만 현재 지주사 도움을 받아 유동성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건 사실이다. 롯데건설, 코오롱글로벌, 신세계건설 등도 PF 우발채무로 인한 위기 가능성이 제기되는 곳들이다.
자금력을 갖춘 대형 건설사와 달리 시행사와 중견 건설사들의 위기감은 더 크다. 최근 건설경기 악화로 대형사를 제외한 대부분의 건설사의 경우 회사채 발행을 통한 자금 조달에 상당한 애를 먹고 있다는 후문이다. 신용등급 하향 등 악재가 잇따르면서 이들 건설사 회사채를 사겠다는 투자자가 거의 없다는 얘기다.
내년 상반기 건설사의 만기도래 회사채 규모는 2조5,000억 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최근 시장 상황을 고려하면 내년부터 '차환(기존 채무 상환) 리스크'가 본격화하고 이 여파는 대형 건설사로까지 번질 수 있다는 게 KIS의 분석이다.
다만 현재의 PF 리스크를 너무 과장할 필요가 없다는 지적도 있다. 한화투자증권은 최근 보고서에서 "PF 관련 리스크는 상존하나 대형 건설사 재무현황 감안 시 2008년 금융위기 수준의 리스크로 보기에는 과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