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대 대법원장 취임 후 처음 열린 전국 법원장 회의에서 '재판 지연' 해결에 대해 집중 논의가 이뤄졌다. 조 대법원장이 추진 중인 '법원장의 장기미제 사건 심리'와 관련해 법원장들이 선도적 역할을 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 논의가 이뤄졌고, 재판 지연의 또 다른 원인으로 꼽히는 법원장 추천제의 개선 방향에 대해서는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조 대법원장은 15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취임 이후 첫 전국 법원장 회의를 개최했다. 전국 법원장 회의는 사법행정사무에 관해 자문하는 기구로 매년 12월 정기회의가 열린다.
회의 핵심 안건은 '재판 지연'이었다. 사법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재판 평균 처리 기간이 민사 본안 사건은 245일에서 420일로, 형사 사건 처리 기간은 158일에서 223일로 늘었다. 조 대법원장도 회의 인사말에서 "재판 지연이라는 최대 난제를 풀기 위한 방안을 다각도로 강구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4시간여 진행된 이날 회의에서 법원장들은 심리 기간이 2년 6개월을 넘은 '장기 미제'의 현황을 공유하고, 중심적인 역할을 할 것을 논의했다. 앞서 조 대법원장이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법원장에게 장기 미제 사건을 우선적으로 담당시킬 생각"이라고 밝혔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민사항소 이유서 제출 의무화에 대한 공감대도 형성됐다. 민사항소 이유서 제출 의무화는 패소한 쪽에서 항소기록 접수 통지를 받은 날부터 40일 내에 항소이유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본안 심리 없이 소송을 끝내는 제도다.
김명수 전 대법원장이 도입한 '법원장 추천제'도 도마에 올랐다. 일각에선 법원장 후보로 거론되는 수석부장판사 등이 유권자인 일선 판사들의 눈치를 본 탓에 사건 처리를 독려하지 않아 재판 지연의 원인이 됐다고 지적했다.
이런 지적에 대해 추천제를 재판 지연의 원인으로 꼽는 건 무리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수원지법 성남지원 남인수 판사는 최근 법원 내부망에 법원장 추천제와 임명제를 시행 중인 법원들의 사건처리율을 비교하는 글을 올리고 "분석 수치를 보면 추천제로 재판 지연이 초래됐다는 주장엔 부합하지 않아 보인다"고 주장했다. 의정부지법 남양주지원 류영재 판사도 "법원장 추천제가 원인인지도 불분명한 '재판 지연' 해결의 기치 아래 사법관료화 심화 등의 문제점들을 마치 없는 것처럼 여기는 제도가 대안으로 주장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법원행정처는 "법원장들은 법원장 후보 추천제의 운용방안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교환했다"고만 설명해 뚜렷한 결론이 나지 않았다는 점을 시사했다. 이밖에 이날 회의에선 △법관 증원 △판결서 적정화 △안전한 법원 구현 방안 등도 논의됐다.
조 대법원장은 "'일과 가정의 양립'이라는 시대적 흐름 속에서 법원 구성원 모두가 재판 및 관련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안전하고 행복한 법원을 만들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