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바닷물 터널 침수' 작전 중…환경 대재앙 시작되나

입력
2023.12.14 01:00
12면
WSJ "이, 지난달부터 바닷물 투입 중"
인근 토양 범람 땐 지하수 오염 우려
사상 최악 식수난에 환경 재앙 이중고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와 전쟁 중인 이스라엘이 지난달부터 하마스의 지하 터널에 바닷물을 채우고 있던 것으로 드러났다. 지상군 투입이 어려운 터널을 침수시켜 하마스 대원을 제거하는 게 목표다. 그러나 토양에 바닷물이 넘쳐흐를 경우 막대한 환경 재앙까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2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의 군사작전에 대해 설명을 들은 미국 관리를 인용, “이스라엘방위군(IDF)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있는 하마스의 지하 터널에 바닷물을 밀어 넣어왔다”고 보도했다.

WSJ에 따르면, IDF는 지난달부터 침수 작전을 진행했다. ‘이스라엘이 가자 북부 해안에 대형 펌프 최소 5개를 설치하는 등 바닷물 침수 작전을 준비하고 있다’는 지난 4일 WSJ 보도 시점에 이미 작전이 진행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이 작전이 자국군 인명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효과적으로 지하 터널을 무력화할 수 있는 방법으로 보고 있다. 펌프는 현재 7개까지 늘어났다. 이스라엘은 WSJ의 논평 요구에 답하지 않았다.

지반 무너지고 지하수 오염… 2015년에도 그랬다

바닷물 침수 작전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원조’는 이집트다. 이집트는 2015년 북부 시나이반도에서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 이슬람국가(IS)와 분쟁하던 중 가자지구 터널을 바닷물로 침수시켰다. “이슬람 무장 단체가 무기를 밀반입한다”는 이유에서다. 이 작전은 가자지구 지상을 공습하던 IDF보다 훨씬 더 효과적으로 터널을 붕괴시켰다.

그때도 작전의 대가를 치른 건 민간인들이었다. 설계가 허술했던 터널 바깥으로 바닷물이 범람하며 터널 반경 100m 일대는 ‘소금 진흙밭’이 됐다. 2015년 11월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인근 농경지는 완전히 황폐화했고 이미 기초가 허술한 가자지구 건물들은 갈라졌다. 일부 지반이 붕괴되기도 했다.

가장 심각한 피해는 담수 오염이었다. 2007년부터 이스라엘이 봉쇄한 탓에 가자지구의 해안 대수층(지하수가 있는 지반)은 이미 동났고, 주민들은 오염된 지하수와 일부 해수담수화 시설, 국제 구호단체 보급품에 의존하고 있다. 그런데 2015년 작전 당시 바닷물이 지하수로 유입되면서 식수 공급의 한 축을 끊었다. 타메르 알슬레이비 당시 가자지구 수자원국장은 “해수 1㎥가 지하수 40㎥를 오염시킨다”고 로이터에 말했다.

해수담수화시설 중단… 지금이 더 열악

이번에는 피해 규모가 커질 수밖에 없다. 지난 10월 7일 전쟁 발발 이후 가자지구 식수 상황은 사상 최악이다. 하수처리시설과 해수담수화시설은 이스라엘의 연료 봉쇄 탓에 가동을 중단했고, 구호품을 실은 트럭 반입량은 전쟁 전 하루 500대에서 최근 100대로 크게 줄었다. 이날 이스라엘이 기존 라파 검문소 외 가자지구 남부 케렘 샬롬 검문소를 개방해 인도주의 트럭 반입을 허용했지만, 얼마나 많은 구호품이 허용될지는 미지수다. 이런 상황에 바닷물 침수로 식수난이 심각해지면 주민들의 피해는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일주일 전 라파로 피란 온 뒤 땅바닥에서 생활한다는 가자 주민 알파라(46)는 미국 뉴욕타임스에 “자녀들이 3일째 고열, 설사, 구토 증세로 고통받고 있다”며 “식수에서 악취가 나며, 손을 씻으면 되레 더러워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전쟁 시작 이후 이날까지 가자지구에서 36만9,000건의 전염병이 보고됐다고 밝혔다.

김현종 기자
베를린= 신은별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