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팅게일보다 먼저 군인으로 복무한 여성

입력
2023.12.12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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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 피비 헤슬



나이팅게일이 크림전쟁의 전장에서 간호사로 활약한 것보다 약 100년 전, 영국 여성 피비 헤슬(Phoebe Hessel, 1713.3~1821.12.12)은 군인으로서 여러 전장을 누볐다. 당연히 여자라는 신분을 감춘 채였다.

빅토리아 시대(1837~1900)를 산 나이팅게일과 달리 헤슬의 시대는 조지 왕조 시대였다. 빅토리아 시대 중산층 여성의 미덕이 하인을 감독해 가정을 돌보고 취미·사교 활동에 충실한 거였다면, 조지 왕조 시대(1714~1837) 여성들은 산업혁명과 프랑스· 미국의 잇단 혁명의 기운 덕에 상대적으로 운신의 폭이 넓었다. 물론 가난한 여성들은 어느 시대나 부잣집 하녀나 보모가 되는 게 '출세'였다.

헤슬에 대한 기록은 브라이튼 성니콜라스 성당 무덤의 짧은 비문이 거의 전부다. 헤슬이 15세 되던 해에 당시 연인(Samuel Golding)이 입대하게 되자 그와 함께 지내기 위해 자진 입대했다는 기록. 아내를 여의고 홀아비가 된 헤슬의 아버지가 군대에 소집되면서 어린 딸을 맡길 데가 없어 소년으로 변장시켜 데려갔고, 병영서 성장한 헤슬이 자연스레 군인이 됐다는 구전 버전도 있다. 어쨌건 군 공식 기록에 따르면 헤슬은 1728년 왕립 제5보병연대에 입대했다. 그는 서인도제도 식민지 전쟁과 오스트리아 왕위계승전쟁 등에 참전했고, 45년 프랑스군과의 퐁트누아(Fontenoy) 전투에서 부상당한 뒤 사령관 부인에게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고 제대했다고 한다. 군율을 어겨 채찍형을 받고 윗옷을 벗게 되면서 성별이 드러났다는 설도 있다.

그는 골딩과 사별한 뒤 브라이튼의 한 어부(Thomas Hessel)와 결혼했고, 당나귀로 행상을 하며 사람들에게 자신의 군대 모험담을 들려주곤 했고, 당시 조지 왕자(훗날 조지 4세)의 눈에 들어 귀한 대접을 받으며 대관식에도 초대됐다고 한다.
그가 복무한 보병 5연대를 계승한 노섬벌랜드 보병대는 1970년대 그의 비석을 복원했다.

최윤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