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의 정점인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가 검찰에서 묵비권을 행사하며 의혹에 관해 아무런 진술을 하지 않았다. 앞서 자진출석하며 신속한 수사를 요구했던 것과는 많이 달라진 태도다. 수사 개시 이후 8개월 가까이 사실관계를 다져온 검찰은 송 전 대표의 진술 내용 등을 검토한 뒤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2부(부장 최재훈)는 8일 송 전 대표를 정치자금법 및 정당법 위반,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뇌물 혐의로 소환해 조사했다. 서민석·윤석환 부부장검사는 확보한 물적·인적 증거를 토대로 송 전 대표가 돈봉투 살포를 지시했거나 인지했는지를 추궁한 것으로 알려졌다. 준비한 질문지만 A4용지 200장 분량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송 전 대표가 민주당 전당대회를 앞둔 2021년 3~5월 돈봉투 살포를 지시했거나 알고 있었던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송 전 대표 측은 300만 원이 든 돈봉투 20개(총 6,000만 원)를 현역 의원들에게 뿌린 것을 비롯해 총 9,400만 원의 금품을 당내에 살포한 것으로 조사됐다.
송 전 대표는 외곽 후원조직 '평화와 먹고사는문제 연구소'(먹사연)를 통해 불법 정치자금을 조달했다는 혐의도 받고 있다. 검찰은 송 전 대표가 2020년 1월∼2021년 8월 박용하 전 여수상공회의소 회장이 운영하는 기업 등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 약 3억 원을 받은 것으로 본다. 이 가운데 4,000만 원은 '여수국가산업단지 내 소각처리시설 신·증설 인허가 절차가 신속히 진행될 수 있게 해달라'는 취지의 청탁과 함께 받은 뇌물이라는 게 검찰 시각이다.
송 전 대표는 돈봉투 의혹이 불거진 후 프랑스에서 급거 귀국한 뒤 두 차례에 걸쳐 검찰에 자진출석하는 등 신속한 소환을 요구했다. 하지만 정작 이날 조사에선 대부분 질문에 대답을 하지 않고 묵비권을 행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송 전 대표는 조사에 앞서 "소환해달라고 했지 조사에 협조하겠다고 말한 적은 없다"며 "헌법상 권리(진술거부권)를 행사하는데, 비난받을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송 전 대표가 묵비로 일관하는 것은 돈봉투 살포 등 사실관계를 부인할 경우 공모 관계로 묶인 다른 사건 관계자들을 자극해 불리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송영길계 좌장'으로 당대표 선거 전반을 기획·총괄한 윤관석 의원이 구속기소됐으면서도 송 전 대표의 지시 등에 대해선 수개월째 함구 중인 점이 영향을 미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검찰은 이날 조사 내용을 토대로 송 전 대표에 대한 사법처리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검찰 안팎에선 이미 기소된 공범들과의 형평성을 고려할 때 구속영장 청구가 이뤄질 것으로 조심스럽게 전망하고 있다. 최측근 윤 의원을 비롯, 송 전 대표의 손발 역할을 하던 전직 보좌관 박용수씨, 캠프 요청으로 금품을 모아 전달한 강래구 전 한국수자원공사 상임감사위원 등은 모두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졌다.
돈봉투 수수 의혹을 받는 의원들에 대한 조사도 속도를 낼 전망이다. 앞서 검찰은 관련 재판에서 돈봉투 수수가 의심되는 의원들의 명단을 공개한 바 있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수수 의원 소환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