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 악화에 임금 동결… 미국 유력지 워싱턴포스트, 48년 만에 최대 파업

입력
2023.12.08 08:05
조합원 750여 명, 하루 제작 멈추고 피켓 시위
18개월간 노동계약 협상 중단… 대량해고 위기
베이조스 인수 뒤 급성장 불구, 과도 확장 여파

미국 유력 일간지인 워싱턴포스트(WP) 직원 수백 명이 7일(현지시간) 파업했다. 일단 하루만 일손을 놓지만 48년 만에 최대 규모다. 무리한 사업 확장에 따른 경영 악화가 장기 임금 동결과 고용 불안정으로 이어졌고, 노동조합의 집단 항의를 불렀다.

신문에 따르면, 기자를 포함한 WP 노조 조합원 750여 명이 이날 새벽부터 24시간 동안 제작을 멈추고 사옥 밖에서 피켓 시위를 벌인다. 이들은 독자들에게도 연대를 위해 홈페이지 및 뉴스 구독 중단에 참여해 줄 것을 독려하고 있다.

이는 1975년 인쇄 노동자 주도로 20주간 지속된 파업 이후 가장 규모가 큰 WP 파업이다. 다만 그때는 언론인 대부분이 파업에 참여하지 않았고 당시 발행인 캐서린 그레이엄이 대체 인력을 고용해 노조 와해를 유도했다고 WP 노조는 설명했다.

경영진은 일단 뉴스 공급과 신문 제작을 변함없이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상당수 기사가 작성 기자 등 제작 참여 직원 이름 없이 ‘WP 직원’ 명의로 나가게 된다. 조합원인 기후 전문기자 사라 카플란은 “이것은 우리와 공정하게 협력하려면 직원을 존중할 것을 요구하는 WP 직원 수백 명의 선언”이라며 “우리 없이도 회사가 신문을 생산하겠지만 좋은 신문은 만들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파업 배경은 고용 조건과 안정성 저해다. 노조에 따르면, 사측은 경영 악화 등을 이유로 18개월 동안 노동 계약 협상을 중단한 상태다. 또 상당수 직원에게는 사실상 해고 압박인 인색한 조건의 자발적 퇴사 제안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WP 노조는 성명에서 “높은 인플레이션(물가 상승)과 경쟁사 수준을 연봉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며 현재 7만3,000달러(9,600만여 원) 수준인 최소 연봉 기준을 10만 달러 선으로 인상해 달라고 사측에 요구하고 있다.

WP는 2013년 아마존 설립자 제프 베이조스에 의해 인수된 뒤 10년간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왔다. 지나친 사업 확장과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이후 언론 시장 침체가 맞물리며 경영이 급속히 나빠졌고, 올해만 1억 달러(1,300억여 원) 넘는 적자가 예상된다고 한다. 대규모 적자는 ‘바이아웃’ 조항 적용 조건에 해당하는데, 경영진이 이를 활용해 전체 고용의 10%인 240명 정도를 내보내려 하고 있으며, 그중 절반가량은 기자직이라는 게 노조 주장이다.

최근 미국 유력지 파업 사례는 WP뿐 아니다. 앞서 뉴욕타임스 노조가 지난해 약 1,100명이 참여한 하루 파업을 단행했고, 5개월 뒤 사측과 새 계약에 합의했다.

워싱턴= 권경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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