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요새’로 불리는 가자지구 지하 터널을 무력화하기 위해 바닷물을 끌어와 침수시키는 계획을 검토 중이라고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스라엘은 하마스가 수백㎞에 달하는 터널에 근거지를 구축, 공습을 피해 기동하거나 물자를 보급하는 등 군사 작전을 수행한다고 보고 있다.
WSJ는 복수의 미국 정부 당국자를 인용해 “이스라엘방위군(IDF)이 지난달 중순쯤 가자지구 알샤티 난민 캠프에서 북쪽으로 약 1.6㎞ 떨어진 지점에 최소 5개 이상의 대형 펌프 설치를 마쳤다”며 이같이 전했다. 이 펌프들을 이용해 지중해에서 끌어온 바닷물을 시간당 수천㎥씩 하마스의 지하 터널로 들이붓는 계획을 세운 것이다.
이스라엘은 지난달 초 미국에도 이를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정부 내에선 일부가 우려를 표했지만, 또 다른 일부는 ‘침수 작전’을 지지했다고 WSJ는 설명했다. 미 당국자들은 신문에 “이스라엘 정부가 아직 최종 결정을 내리진 않았으나, 계획 실행을 배제하진 않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IDF 관계자는 WSJ의 확인 요청에 직접적 언급을 피하면서 “다양한 방법으로 하마스의 테러 공격 능력을 뿌리 뽑기 위한 작전을 수행 중”이라고 밝혔다.
이스라엘이 ‘터널 침수’라는 카드까지 만지작거리게 된 건 그만큼 하마스 땅굴을 무력화하는 데 난항을 겪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IDF는 800개 이상의 터널을 찾아냈고, 이 중 약 500개를 파괴했다고 발표했다. 그럼에도 하마스 지도자와 대원들은 터널 내에서 공습이나 드론 감시를 피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실제 이스라엘은 공병과 지하특공대 등 터널 전담 부대는 물론 군견과 로봇, 드론까지 투입해 ‘터널 무력화’ 작전에 매달리고 있다. 하지만 가자지구의 인구 밀집 탓에 레이더 등으로 지하 시설을 탐색하는 데엔 애를 먹고 있다.
폭파도 쉽지 않다. 몇몇 지점만을 폭파하는 게 아니라, 터널 전체 구간에 폭발물을 설치해야만 완전 철거가 가능하다. 그러나 터널을 따라 액체 폭발물을 채워 넣거나 고온 폭발을 일으키는 열압력탄을 사용하면 대규모 민간인 희생이 불가피해진다. 학교, 병원 등 인근에 위치한 터널도 부지기수다. FT는 “지중해에서 바닷물을 끌어오는 건 세 번째 옵션으로, 이스라엘이 이미 사용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보도했다.
다만 실제 실행에 옮길지는 미지수다. 터널 구조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아 바닷물 주입 작전의 성공 가능성이 불확실한 데다, 식수 오염이나 토양 황폐화 등을 야기할 우려도 제기된다. 이스라엘은 물론,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이 격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