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 니카라과 독재 정권이 국제 미인대회 '미스 유니버스'의 현지 책임자에게 반역 등 혐의를 적용했다. 반(反) 정부 성향의 자국 여성을 의도적으로 우승시켜 정부 전복을 꾀했다는 황당한 이유에서다.
2일(현지시간) AP통신 등에 따르면, 니카라과 경찰은 전날 자국의 미스 유니버스 책임자인 카렌 셀레베르티 감독을 반역·조직범죄·증오선동 등 혐의로 기소했다고 밝혔다. 당국은 성명을 통해 "셀레베르티와 그의 가족은 정부 전복을 위해 아무런 상관 없는 미인대회를 정치적 함정의 장으로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셀레베르티에게 입국 금지 조치를 내리고 그의 남편과 아들을 반역 혐의로 함께 기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건은 지난달 18일 엘살바도르에서 열린 제72회 미스 유니버스 대회에서 미스 니카라과인 셰이니스 팔라시오스가 우승을 차지하면서 시작됐다. 니카라과는 전례 없는 국제 미인대회 우승에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고, 다니엘 오르테가 대통령은 19일 정부 성명을 내고 축하했다. 니카라과에서는 통상 항의 시위나 국기를 들고 행진하는 것이 법으로 금지되어 있지만, 당선 축하를 기회로 시민들은 거리 행진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팔라시오스가 2018년 대규모 반정부 시위에 참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정부의 태도는 반전됐다. 시위 사진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퍼지며 팔라시오스가 20년 넘게 집권하고 있는 오르테가 정권에 대한 저항의 상징으로 떠오르자 통제에 나선 것이다. 대통령의 아내이자 부통령인 로사리오 무리요는 팔라시오스의 우승을 축하하는 야권을 향해 "아름다운 축하의 순간을 파괴적인 반정부운동의 재료로 이용하는 '테러리스트' 평론가들의 모욕적인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고 했다.
국제사회에서는 오르테가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AP통신은 "미인대회 감독에게 적용된 혐의는 억압적이고 폐쇄적인 정부, 쿠데타 음모 주장 등이 등장하는 제임스 본드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것들"이라고 지적했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의 후안 파피어 미주 부국장은 "국제사회로부터 체계적인 탄압과 고립으로 볼 때 니카라과는 중남미의 북한"이라고 말했다.
한편 오르테가 대통령은 1970년대 말 소모사 독재 정권을 무너뜨린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 지도자 출신으로 1985년 임기 5년의 대통령직에 올랐다. 이후 뒤이은 대선에서 연거푸 낙선했으나 2007년 재집권한 뒤 지금까지 장기 집권을 이어가고 있다. 오르테가 정부는 2018년 4월 대규모로 펼쳐진 반정부 시위를 무력 진압하는 과정에서 최소 355명의 사망·실종에 관여하고 약 15만 명을 추방한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