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많아지면 건강보험 재정에 부담이 된다." 대한의사협회(의협)가 의과대학 정원 확대 정책에 반대하는 주요 논리 중 하나다. 의사가 늘어나면 의료행위가 과다하게 늘어나고, 이로 인한 의료비 지출 증가로 건보 재정이 악화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진료비(수가)를 빅데이터를 통해 과학적으로 조정하면 이런 우려를 충분히 불식시킬 수 있다"고 반박했다.
건보공단은 지난달 30일 충북 제천시 공단 인재개발원에서 연 '보건의료데이터를 통한 가치 창출' 강연에서 "진료비 평가에 균형이 맞춰지면 의료 이용 문화가 바뀔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공단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감염병 대응, 만성질환 관리 등 국가 보건정책 수립에 필요한 자료를 만들어 정부를 지원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공단이 활용하는 자료는 주민등록 가족관계등록 국세 지방세 건물 출입국관리 등으로 방대하다.
공단의 빅데이터 분석은 지난 5월 보건복지부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가 의료행위별 수가 불균형을 처음으로 조정하는 데 기여했다. 공단이 '건강보험 급여 유형별 비용 대비 수익 비율'을 분석한 결과, 병원이 진찰료 수가로 얻는 수익은 모든 의료행위 가운데 약 조제를 제외하고 가장 낮은 수준이었다. 반면 검사료, 영상진단, 방사선치료를 통한 수익은 진찰료의 2~2.5배로 매우 높았다. 진찰료 수익이 낮으니 의사가 환자 대면 시간을 최대한 줄이는 '1분 진료'가 성행하고, 병원이 자기공명영상장치(MRI), 컴퓨터단층촬영(CT) 등 고가의 기기 검사를 유도하는 이유가 과학적으로 입증된 셈이다.
건정심은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동네 의원급의 진찰료나 필수의료 수술 수가를 보완하는 방안을 논의해 나가기로 했다. 공단이 의료기관에 지급할 수가를 계산할 때 적용하는 기준치인 '환산지수'를 이제 의료행위별로 조정할 수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그동안 환산지수를 조정할 때 의료계는 앞다퉈 수가 인상을 요구했는데, 정부가 수가 인상 요인을 세분해서 검토할 만한 근거 자료가 마땅치 않다 보니 의료계 요구를 필요 이상으로 받아들이거나 거부하는 일이 반복된다는 지적이 있었다.
공단은 향후 빅데이터를 통한 수가 조정으로 필수의료 공백과 같은 고질적 의료시스템 문제도 점차 해소될 것으로 기대했다. 공단 빅데이터운영실 관계자는 "필수의료 등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의료행위에 대한 수가가 개선되면 '소아과 오픈런' '응급실 뺑뺑이' 같은 문제가 정상화될 수 있을 것"이라며 "수가 불균형 해소와 더불어 의대 정원이 늘어나게 되면 국민과 의료계 모두에 이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