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학자들은 약 5,500년 전 유럽 신석기 농경문화의 붕괴(neolithic decline)를 그 무렵 시작된 중앙아시아 유목민들의 대규모 이주와 그들이 퍼뜨린 흑사병균(Yersinia pestis) 때문이라 추정해 왔다. 이른바 인류 최초의 팬데믹 가설. 하지만 스웨덴과 덴마크 과학자들은 2018년 12월 6일 과학저널 ‘셀(Cell)’에 발표한 논문에서 그 원인이 팬데믹인 건 맞지만 중앙아시아 유입설은 틀렸을지 모른다고 주장했다.
스웨덴 남부 고켐(Gokhem)의 약 4,900년 전 신석기인 78명의 집단 매장지 연구에서, 학자들은 사망자들이 거의 같은 시기에 숨진 사실과 함께 20대로 추정되는 한 여성의 유골 등에서 흑사병균 변이 유전자를 발견했다. 14세기 유럽을 휩쓴 흑사병균(림프절 페스트)보다 더 치명적인 폐 페스트균의 유전적 특질을 지닌 그 병균의 게놈 추적 결과 유목민 이주 전인 약 6,000년 전 조성된 대규모 신석기인 정착촌에서 비롯돼 변이된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신석기인들은 농경과 더불어 원시적 형태의 조직 사회를 구축해 1만~2만 명에 달하는 대규모 공동체(mega settlements)를 형성하고 있었다. 가축과 동거하는 밀집한 주거 형태로 인한 열악한 위생 등이 화근인 셈이었고 약 5,700년 전 발명된 바퀴 덕에 광역 교역이 이뤄지면서 유럽 변방으로까지 전염병이 급격히 번졌다는 것. 논문 공동 저자인 스웨덴 예테보리대 고고학자 칼 괴란 쇠그렌(Karl-Göran Sjögren)은 “신석기 문명의 변방에서 전염병균이 발견됐다는 것은 당시 전염병이 확산될 수 있는 광범위한 접촉 네트워크가 있었음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그들의 연구는 세균이 거대 문명의 쇠락을 야기하고 결과적으로 현대 유럽인의 유전자 구성에까지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 혹은 가능성을 시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