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 여러분들께 정말 죄송합니다."
명가의 충격적인 몰락이다. 정규리그 4차례와 컵대회 5차례 우승 트로피를 거머쥔 K리그 전통의 '축구 명가' 수원 삼성이 창단 28년 만에 처음으로 2부 리그로 강등됐다. 염기훈 감독 대행 등 코칭스태프와 선수단, 구단 관계자들은 고개 숙여 팬들에게 사죄했지만, 충격에 빠진 수원 팬들은 수뇌부의 사퇴를 요구하며 강경하게 맞섰다. 올 시즌 감독만 4명이 바뀌는 등 구단의 위기를 사령탑 교체로만 넘기려는 운영 방식과 모기업의 저조한 투자로 예견된 몰락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수원은 지난 2일 경기 수원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3 K리그1 38라운드 최종전인 강원FC와 홈경기에서 피 말리는 접전 끝에 0-0으로 비겼다. 수원은 결국 리그 12위 '꼴찌'(승점 33)로 '다이렉트 2부 강등'이 확정됐다. 내년엔 K리그2에서 경쟁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수원의 2부리그 강등은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다. 지난 1995년 창단한 수원은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2회, K리그에서 4회, FA컵에서 5회 우승한 프로축구 대표 명가다. 한때는 스타급 선수들이 즐비해 스페인 라리가의 레알 마드리드를 빗대 '레알 수원'이라는 별칭도 얻었다. 또한 열정적인 팬들의 응원 속에 K리그 팬덤 문화도 이끌어 온 팀이다. 국가대표팀 경기에서 나온 "대~한민국!" 구호도 "수~원 삼성!"의 응원가에서 따올 정도로 팬덤이 두터운 팀 중 하나다. FC서울과의 '슈퍼매치', 수원FC와 '수원더비'가 있을 때면 경기장을 가득 메운 수원 팬들이 펼치는 응원전도 볼거리였다.
수원 팬들은 이날도 2만5,000여 명이 '빅버드' 경기장을 찾아 간절한 응원을 보냈지만 끝내 2부 강등을 목격하고 말았다. 팬들의 충격은 수원의 수뇌부로 향했고 이준 구단 대표이사와 오동석 단장의 사퇴요구로 이어졌다. 경기 후에도 팬들은 수원 선수단 차량을 막아선 채 2시간 동안 대치하는 등 강등의 원망을 풀어내려는 듯했다. 경찰 출동으로 상황은 종결됐지만 구단이나 선수, 팬들은 강등의 상처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수원의 몰락은 예견된 수순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지난 시즌에도 강등권으로 밀려 승강 플레이오프(PO)를 통해 가까스로 1부에 잔류했다. 올 시즌도 개막 이후 7경기에서 '무승(2무 5패)'으로 흔들리다 결국 이병근 감독이 1년 만에 경질되고 말았다. 문제는 최성용 감독대행, 김병수 감독, 염기훈 감독대행까지 이번 시즌에 감독만 4명이 물갈이되며 자리를 잡지 못했다. 구단 성적 책임을 감독에게만 물은 경영진의 방만함도 비난의 대상이 됐다.
막대한 자금으로 스타급 선수들을 보유하던 수원은 2014년 삼성그룹 산하 스포츠단 운영 주체가 제일기획으로 바뀌면서 구단의 운명도 변했다. 승강제가 처음 도입된 2013년만 해도 총 연봉 90억 원 이상으로 구단 중 1위에 올랐지만 지난해엔 오히려 이보다 줄었다. 지난해와 올해 K리그1 2연패를 달성한 울산 현대가 지난 10년 사이 인건비를 60억 원대에서 170억 원 이상으로 3배 가까이 늘린 것과 비교된다.
2010년부터 수원에서 선수생활을 한 염기훈 감독대행도 "2010년과 현재 수원 스쿼드의 차이가 크다. 당시에 구단이 쓰는 예산도 많았다.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열악해진 게 사실"이라고 씁쓸해했다.
수원의 꼴찌 확정으로 강원(10위·승점 34)과 수원FC(11위·승점 33)는 '다이렉트 강등'을 피했다. 수원FC는 수원과 승점이 같지만 다득점에서 앞섰다. 결국 강원은 김포FC와, 수원FC는 부산 아이파크와 각각 승강 PO를 치른다.
한편 K리그1 광주FC가 승격 첫 시즌부터 구단 사상 최초로 AFC 챔피언스리그(ACL) 티켓을 거머쥐는 쾌거를 이뤘다. 광주(승점 59)는 3일 K리그1 최종전인 포항 스틸러스(2위·승점 64)와 홈경기에서 득점 없이 비겨 3위를 차지, ACL 엘리트(ACLE) 플레이오프 진출권을 따냈다. ACLE 본선행 진출권은 울산(리그 1위)과 포항(FA컵 우승)이 각각 가져갔다. 광주와 3위 경쟁을 벌인 전북 현대는 이날 울산에 패하면서 ACL2 출전권을 따는 데 만족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