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집중 낮추고, '정상가족' 관념 버리면, 초저출생 벗어나"

입력
2023.12.03 16:30
8면
한은 경제연구원 중장기 보고서
OECD 평균 수준으로 여건 개선
출생률 0.845명 더 늘어나... 2배↑

출생 여건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평균 수준으로 개선하면 한국 합계출생률이 2배 늘어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3일 한국은행 경제연구원은 중장기 심층연구 보고서 '초저출산 및 초고령사회: 극단적 인구구조의 원인, 영향, 대책'을 발표했다. 연구에 참여한 황인도 거시경제연구실장은 "'초', '극단'을 제목에 단 것은 '사회에 강하게 경고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한국은 2002년부터 21년째 합계출생률 1.3명을 밑도는 저출생국이다. 지난해 합계출생률은 0.78명이다. 2021년 기준(0.81명)으로는 OECD 38개국 꼴찌고, 세계은행 분석에서는 217개국 중 홍콩(0.77) 다음으로 낮다. 2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가 한국 인구 감소에 대해 "14세기 흑사병을 능가한다"고 언급할 정도로 심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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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120309400003736)

원인: 노동시장 이중구조 심화, 인구 밀집

연구팀은 "초저출생은 '청년'이 느끼는 높은 '경쟁 압력'과 고용·주거·양육 '불안'과 연관됐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황 실장은 이를 "비정규직이 늘면서 고용의 질이 낮아졌고, 양질의 일자리를 향한 경쟁이 과거보다 심화했다. 근로소득 증가세는 장년층 대비 부진한 반면, 부채는 훨씬 급등했다"고 정리했다. 불안도가 높은 탓에 "자녀 세대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아지지 않을 것"이라며 미래를 비관하는 청년도 61.6%에 달했다.

수치상으로 보면 경쟁 압력 체감도가 높은 그룹의 희망 자녀 수가 0.14명 적었고, 비취업자보다 비정규직의 결혼 의향이 1.8%포인트 낮았다. 의료비, 교육비보다 주거비를 걱정1하는 그룹의 결혼 의향이 평균 대비 5.3%포인트, 희망 자녀는 0.1명 적었다. 모두 지난해 전국 25~39세 2,000명(미혼자 1,000명, 무자녀 기혼자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다. 또 16개 시도 분석 결과에서는 전세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인구밀도에 따라 출생률 편차(서울 0.59명, 세종 1.12명)가 크게 나타났다.

대안: 6가지 시나리오

앞서 살펴본 출생 저해 요인을 OECD 34개국 평균 수준으로만 개선해도 합계출생률이 대폭 늘어난다는 게 연구팀 결론이다. 우리나라는 도시 인구 비중이 81%로 높아, 도시인구집중도 개선 효과가 0.414명으로 가장 컸다. 혼외 출생아 비중도 2.3%에서 43%로 증가하면 0.159명이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두 가지만 개선돼도 합계출생률은 1.3명을 웃돈다.

연구팀은 그러나 "이 두 가지는 단기간 변화하기 어렵다"고 단서를 달았다. 다만 "혼인 여부와 관계없이 임신·출산 사실을 증명하면 되는 '신생아 특별공급'처럼 아이 중심의 지원 체계로 전환하고, 제도가 다양한 가정 형태를 수용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 외 대안으로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 △주택가격 하향 안정화, △가족 관련 지원 예산 확대, △육아휴직 이용률 제고를 들었다. 네 가지 모두 OECD 평균 수준으로 올리면 합계출생률은 0.272명 더 늘어난다. 연구팀은 특히 육아휴직과 관련해 "남성과 중소기업 근로자의 사용률을 높여야 하며 직장문화가 바뀌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1 주거비를 걱정
연구팀은 국내외 문헌 최초로 결혼·출생과 관련한 무작위통제실험을 했다. 설문 대상 2,000명을 무작위로 네 개의 그룹으로 나눈 후, 한 그룹에는 아무 정보도 주지 않고, 나머지 세 그룹에는 각각 주거비, 교육비, 의료비를 연상하게 하는 정보를 제공한 후 질문했다.
윤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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