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창고 화재 현장에서 불을 끄던 20대 소방관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소방관은 구급대원인데도 화재 진압에 나섰다가 사고를 당한 것으로 파악됐다.
1일 제주소방안전본부에 따르면 이날 0시 49분 제주 서귀포시 표선면 소재 약 50㎡ 규모 창고에서 화재 발생 신고가 접수됐다. 구급대원이었던 제주동부소방서 표선119센터 소속 임성철(29) 소방교는 9분 만인 0시 58분쯤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했다. 그는 창고 옆 주택에 거주하던 80대 노부부 등 주민들을 일단 대피시켰고, 펌프차량 등 화재진압 장비가 도착하자 방화복과 헬멧 등 장비를 착용하고 진압 대원들과 함께 화재 현장에 투입됐다. 불길이 거세지며 창고 지붕 콘크리트 패널이 무너져 임 소방교를 덮쳤고, 머리를 다쳐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눈을 감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임 소방교를 소방장으로 1계급 특진하고 옥조근정훈장을 추서키로 했다.
임 소방장처럼 제주 읍면지역에서 근무하는 구급대원 상당수는 화재 진압에 동원된다고 한다. 화재가 나 구급대원이 먼저 현장에 도착해 인명 검색을 실시하고, 구조 대상이 없거나 구조 임무가 종료되면 화재 진압에 투입되는 현실이라는 것이다. 일부 구급대원은 아예 방화복 등 개인장비를 준비하고 다닌다. 제주에서 근무하는 한 소방관은 “1분 1초라도 빨리 불을 꺼야 하는 급박한 상황에서 진압대원, 구급대원이 어디 있겠냐”며 “도심은 인근 지역 지원이 신속하게 이뤄지지만, 읍면지역 등 외곽은 지원을 기다릴 시간이 없어 주 업무가 끝나면 모두 화재 진화에 달려든다”고 했다. 읍면지역 119센터의 경우 1개조가 구급대원 3명과 진압대원 4명으로 구성되는데 구급대원을 빼고는 화재 진압이 어려운 경우가 적잖은 것으로 전해졌다.
물론 구급대원이 화재진압 교육을 안 받는 건 아니다. 소방노조 관계자는 “소방 업무는 구조, 구급, 화재진압으로 나뉘는데 소방학교에 입교하면 분야 구분 없이 심폐소생술, 인명구조, 화재진압 등 관련 교육은 이수한다”며 “각각의 직무는 있지만 현장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진행되는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전문 분야가 아닌 곳에 배치되면 사고 위험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2013년에도 경기 포천에서 구급대원이 화재 현장에서 불을 끄다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제주 지역의 다른 소방관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소방관이 자기 업무가 아니라는 이유로 불이 번지는데 나 몰라라 할 수는 없다”면서도 “구급대원들은 화재 진압 때 대부분 보조 역할을 수행하는데 화재 현장은 워낙 예측 불가능해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고 했다. 이영주 경일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구급대원이 불을 끌 수 있겠지만 전문 인력에 준하는 숙련도를 갖고 있느냐는 다른 문제”라고 지적했다. 결국 소방 인력 확충이 근본 해결책이다. 국내 소방공무원은 2020년 6만315명, 2021년 6만4,054명, 2022년 6만5,935명으로 증가 추세지만 여전히 소방공무원 1명이 780명(2022년 기준)의 국민을 담당하고 있다.
순직한 임 소방장은 5년차 소방공무원으로, 각종 사고 현장에서 늘 솔선수범했던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그가 보여준 용기와 헌신을 기억하겠다”(오영훈 제주지사) “두려움 없는 용기로 화마와 맞서 싸운 아름다운 청년을 잊지 않겠다”(소방청)를 비롯해 국민들의 애도의 목소리도 이어지고 있다. 임 소방장의 장례는 제주특별자치도장(葬)으로 엄수되며, 유해는 국립제주호국원에 안장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