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가 최소 6개월 이상 긴축 기조가 지속될 것임을 예고했다. 시장은 '금통위 내 추가 인상 주장이 줄어들고 있다'며 완화적으로 해석했다.
한은 금통위는 30일 만장일치로 기준금리를 연 3.5%로 7연속 동결했다. 통화정책방향문(통방문)에는 "물가 상승률이 목표 수준으로 수렴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 때까지 통화 긴축 기조를 충분히 장기간 지속할 것"이라고 명시했다. '상당 기간'에서 '충분히 장기간'으로 긴축 기간을 늘린 것인데, 이창용 총재는 이를 "6개월보다 더 오래"라고 풀이했다. 이번에도 '매파적 동결'인 셈이다.
매파 금통위 배경 중 하나는 ①물가다. 이날 한은은 '수정 경제 전망'을 발표하고 올해와 내년 물가 상승률 전망을 3.6%, 2.6%로 각각 0.1%포인트, 0.2%포인트 상향 조정했다. 국제유가가 주요 산유국 감산으로, 농산물 가격이 여름철 기상 이변으로 예상보다 높은 수준을 기록한 결과다. 이에 지난달 한국 소비자물가 상승률(3.8%)이 미국(3.2%)을 역전하기도 했다.
금리 인상이 아닌 동결을 선택한 것은 "둔화 흐름은 지속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총재는 "물가 둔화 타이밍이 한 달 정도 미뤄진 것이다. 우리는 물리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기조상의 변화는 없다고 생각해 긴축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한은은 2025년 초에야 물가 상승률이 목표치 2%에 도달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②높은 수준의 가계부채도 긴축 지속 이유다. 금통위는 통방문을 통해 "가계부채 증가 추이와 대외 여건 불확실성이 높은 만큼 현재 긴축 기조를 유지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밝혔다. 이날 금융감독원 발표에 따르면, 전(全) 금융권 가계대출은 8개월 연속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다만 "증가폭이 확대될 가능성은 낮다"는 게 당국 판단이다. 제2금융권 가계대출이 꾸준히 줄고, 은행도 주택담보대출 관리를 강화했기 때문이다. 실제 27일까지 전 금융권 가계대출 증가분은 전월(+6조3,000억 원)에 크게 못 미치는 2조3,000억 원이었다.
이처럼 기준금리 상승 압력이 여전한 탓에 지난 회의에서 "금리 인하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고 밝혔던 한 위원은 주장을 철회했다. 이번 회의에서는 이 총재를 제외한 금통위원 6명 중 4명이 "추가 인상 가능성을 열어 둬야 한다"는 견해를 냈고, 2명은 "성장과 금융 안정을 고려할 때 유지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밝혔다.
이 총재는 '내년 상반기 주요국 금리 인하' 기대감도 과도하다고 경고했다. 간밤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경기동향보고서(베이지북)에서 "미국 경제 성장과 물가 상승 속도가 둔화했다"는 진단을 내놓으며, 금리 인하 기대감이 증폭됐다. 하지만 이 총재는 "중앙은행 총재들을 만나서 이야기해 보면 확실히 시장이 앞서가고 있다"고 말했다.
강성 발언에도 시장은 "긴축 강도가 점진적 선회하고 있다"(윤여삼 메리츠증권 연구원)고 해석했다. 강승원 NH투자증권 연구원은 "8월까지 6명 전원이 추가 인상 가능성을 열어 뒀으나 이번에 두 명이 동결에 무게를 뒀다"며 "점차 추가 인상 가능성을 닫는 위원 수가 늘고 있다"고 밝혔다. 임재균 KB증권 연구원은 "2%대 물가는 내년 9월 초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하며 빠르면 내년 3분기 한은이 금리를 인하할 것으로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