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명수사 핵심고리는 황운하… ①송철호에겐 청탁 ②靑에선 지시받아

입력
2023.11.30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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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이 인정한 하명수사 당시 상황]
송철호가 황운하에게 청탁한 사실 인정
청와대가 경찰에 수사 지시한 것도 사실
재판부 "공권력이 선거 좌지우지" 질타

법원이 문재인 대통령 시절 청와대의 선거개입 의혹에 유죄 판단을 내린 건 '대통령실의 감찰 기능'과 '경찰의 수사 기능'이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치려는 시도에 실제 동원됐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사실상 권력기관을 이용한 사찰 및 선거개입이 이뤄졌다고 본 재판부는 사안의 중대성과 관련자들의 극렬한 혐의 부인 상황을 감안해 실형을 선고한 것으로 보인다.

왜 유죄인가

법원이 판결을 통해 인정한 사실을 보면, 당시 하명수사의 핵심 고리는 황운하 더불어민주당 의원(당시 울산경찰청장)이었다. 법원은 ① 당시 울산시장이던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에 대한 수사 청탁 ②청와대의 하명수사 지시가 황 의원에게 순차적으로 전달됐다고 봤다. 재판부는 "송철호 전 시장 등은 선거전략으로 김 대표 관련 비위를 활용하기로 논의한 뒤 청와대 민정비서관실 측에 김 대표 측근 비리 정보를 제공해 수사를 청탁했다"며 "백원우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 등은 지방자치단체장의 비위는 대통령비서실 감찰 권한에 속하지 않음을 알면서도 범죄첩보서를 가공해 경찰청에 이첩했다"고 설명했다.

재판부에 따르면 이 범죄첩보서는 울산경찰의 총 책임자 황 의원에게 전달됐고, 실제 수사로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백 전 비서관 등은 수사진행 상황을 수시로 보고받았고, 송 전 시장 등은 수사와 관련해 김 대표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조성하는 등의 방식으로 선거운동을 했다는 것이 재판부 판단이다. 피고인들은 "현직 시장 측근에 대한 비위 수집과 이첩은 통상 업무"라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청와대가 감찰권한이 없는 사람의 첩보를 수집·작성하고, 그 자료를 수사기관에 이첩하는 것이 통상적 업무라 한다면, 이는 대통령비서실이 권력을 이용해 정치인이나 민간인 등을 사찰하고 수사를 의뢰하고 있다는 것과 같은 의미"라고 질타했다.

송 전 시장이 황 의원에게 수사 청탁을 한 혐의도 유죄로 봤다. 재판부는 △송병기 전 부시장과 김 대표 형제 비리 고발인이 통화한 점 △송 전 시장과 만난 황 의원이 김 대표 형제와 고발인 관계를 조사하도록 경찰에 지시한 점 등을 들어, 송 전 시장이 실제 울산경찰 총수이던 황 의원에게 수사를 청탁한 것으로 판단했다. 황 의원이 "김 대표 형제 비리는 울산경찰청 홍보담당관으로부터 들은 것"이라며 정보 출처를 부인했지만, 재판부는 "당시 담당 수사관들의 증언, 그 수사 관련 보고서의 내용과 보고일자 등을 감안하면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일축했다.


왜 실형인가

법원은 이 사건을 "경찰조직과 대통령비서실의 공적 기능을 정치적 이익을 위해 사적으로 이용한 사건"으로 봤다. 그래서 "엄중한 처벌을 통해 다시는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할 공익상의 필요가 매우 크다"며 실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특히 '잘못을 알고도 저지른 범죄'라고 강조했다. 선거에 여러 번 출마한 송 전 시장, 국회의원이었던 백 전 비서관 등은 선거의 공정성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선거에 부당하게 개입했다고 질책했다. 또 범행을 뉘우치기는커녕 전혀 반성하고 있지 않았다는 점, 실제 김 대표가 낙선한 점도 불리한 양형 사유로 고려했다.

법원 안팎에선 공소시효가 6개월인 공직선거법 1심이 선출직 공무원의 임기(4년)와 비슷한 시간(3년 10개월)만큼 소요된 점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재판을 받던 송 전 시장은 지난해 무사히 임기를 마쳤고, 황 의원도 사실상 임기가 끝난 후 최종심 판단을 받기 때문이다.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이번 사건은 6개월 안에 끝내기는 어려웠을 것이지만, 4년간 재판을 끈 건 분명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긴 것"이라고 말했다.


박준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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