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 오해와 편견이 빚은 억측… 괴물은 누가 만들어내나

입력
2023.11.28 17:23
22면
29일 개봉 고레에다 신작 ‘괴물’
학부모 교사 학생 엇갈린 시선 통해
입체적인 진실을 찾아가는 수작

어린 아들 미나토(구로가와 소야)가 이상하다. 갑자기 가출을 하고 달리는 차에서 뛰어내린다. 싱글맘 사오리(안도 사쿠라)는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음을 직감한다. 그는 학교를 찾아간다. 최근 전근 온 교사 미치토시(나가야마 에이타)가 폭력적인 행위를 한 정황을 포착한다. 사오리가 추궁을 하자 미치토시는 “손과 코가 상호 접촉이 있었다”는 해괴한 말을 한다. 미치토시는 기이하게도 고개를 숙이기는커녕 느닷없이 사탕을 입에 넣는다. 그는 주민 사이에서 퇴폐적인 유흥업소를 출입하는 사내로 소문이 나있다. 미치토시는 괴물 같은 폭력 교사일까.

일본 영화 ‘괴물‘의 시작은 도발적이다. 행동이 이상한 교사가 어린 학생에게 폭언을 서슴지 않고 폭행까지 저질렀는데, 학교는 무마하기 바쁘다. 남편이 일찌감치 세상을 떠나 세탁소에서 일하며 홀로 아이를 키우는 사오리에게 교육기관은 그렇게 무정해도 되는 것일까. 얼마 전 가정에서 참극이 벌어져 무기력하게만 보이는 교장은 일말의 직업의식이나 책임감은 없는 걸까. 교사 미치토시는 미나토가 동급생을 괴롭히기에 말린 것뿐이라고 주장하지만 그는 왜 어린 제자에게 폭력을 휘두른 걸까.

의문부호가 이어지나 곧 관객은 새로운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폭력 교사 미치토시‘의 서사는 사오리의 관점에서 쓰인 것이다. 미치토시의 시선으로 동일 사안에 대한 이야기가 달리 펼쳐지면 상황은 돌변한다. 미치토시는 사오리의 편견과 달리 가슴 따스하고 교사로서 직분을 다하려는 이다. 반면 미나토는 요주의 인물이다. 아이들에게 왕따당하는 여린 동급생 요리(히이라기 히나타)를 괴롭힌다. 미나토가 고양이를 죽였다는 진술이 따르기도 한다. 미나토는 미치토시를 곤경에 몰아넣기 위해 악의적인 거짓말을 한 것일까. 사오리의 생각과 달리 미나토가 괴물 같은 폭력 학생인 걸까.

영화는 세 부분으로 나뉘어 전개된다. 사오리와 미치토시에 이어 미나토의 눈으로 이야기가 새롭게 쓰이며 진실이 드러난다. 세 사람이 각자 바라보는 단면이 모여 입체적인 현실이 구성된다. 미나토와 요리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아니다. 언뜻 보면 ‘괴물’의 서사 전략은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일본 고전영화 ‘라쇼몽‘(1950)을 닮았다. ‘라쇼몽’이 여러 사람의 각기 다른 관점을 통해 진실을 외면하는 인간의 이기주의를 그리려 했다면, ‘괴물’은 세 사람의 시선을 바탕으로 진실에 다가가려 한다.

‘괴물‘에는 도심 한복판 목욕탕 화재 장면과 도시의 밤 전경이 여러 번 등장한다. 화재와 전경은 모든 이들이 그대로 접하고 받아들이는 사실이다. 하지만 사람의 언행과 생각은 왜곡돼 전해지기 마련이다. 제도와 문화가 만들어낸 편견과 오해 때문이다. 평범한 이들을 괴물로 만드는 이는 바로 우리 자신이라고 영화는 웅변한다.

‘아무도 모른다’(2004)와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2), ‘어느 가족’(2018) 등으로 유명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신작이다. 고레에다 감독은 지난 22일 열린 화상 기자간담회에서 “극 후반부로 갈수록 (가해자를 겨냥해) 여기저기 돌아가던 화살이 결국 나에게 향하게 된다는 걸 느끼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 유명 방송 작가 사카모토 유지의 각본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사카모토는 한국에서 새롭게 만들어졌던 드라마 ‘마더‘를 비롯해 ‘그래도, 살아간다’, ‘우먼‘ 등으로 국내에서도 팬층을 형성하고 있다. 고레에다 감독과 사카모토의 협업은 ’괴물‘이 처음이다. 두 사람은 이 영화로 지난 5월 제76회 칸국제영화제 각본상을 받았다. 음악은 지난 3월 세상을 떠난 세계적인 음악인 사카모토 류이치가 맡았다. 29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