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번 찍으면' 경찰에 넘어갑니다... 60세 이상 고령 스토킹 한달 100명

입력
2023.11.28 04:30
10면
접근금지명령 9번 위반한 70대 징역형
인지능력 저하 등 이유로 심각성 몰라
"고령화로 불가피... 맞춤식 대책 필요"

접근금지 명령을 받고도 이웃을 수십 차례 '스토킹'한 70대 남성에게 징역형이 선고됐다. 스토킹을 하다 적발된 60세 이상 피의자는 한 달에 100명이 넘는다. 급속한 고령화와 함께 노년층의 스토킹 범죄도 늘고 있는 만큼, 세대 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대책이 필요해 보인다.

2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서부지법 형사6단독 김유미 부장판사는 15일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및 절도 혐의를 받는 A(71)씨에게 징역 2년 4개월을 선고했다. 40시간의 스토킹 치료프로그램 이수도 명령했다.

A씨는 2022년 9월부터 올해 7월까지 아파트 이웃주민 B씨를 52번이나 스토킹했다. 그는 피해자 집 앞에 일부러 시계를 두고 가거나, B씨 자택문 손잡이를 당기고 그 앞을 서성이기도 했다. 2월엔 법원으로부터 △피해자와 그의 주거지 등으로부터 1m 이내 접근 금지 △휴대폰 연락 금지를 부과받았지만 9차례 어겼다.

스토킹 행위는 오히려 과감해졌다. A씨는 피해자 집에 찾아가 도어록을 풀려는 시도까지 했다. 그에게는 무인판매점에서 아이스크림 등 음식물을 10차례 훔친 혐의도 적용됐다. 재판부는 "법원의 수차례 경고에도 불구하고 구속 전까지 범행했고, 법정에서 범행이 촬영된 폐쇄회로(CC)TV 영상을 보고도 잘못을 반성하고 있지 않다"며 실형 선고 사유를 밝혔다.

계속 느는 '노인 스토커'... "스토킹=범죄 알려야"

노인이 스토킹 가해자로 피의자 입건되는 사례는 계속 늘고 있다. 지난해 경찰청의 '연령별 스토킹 범죄 현황'을 보면 지난해 60세가 넘는 피의자는 1,242명(전체의 12.4%)으로 월 평균 103.5명에 달했다. 경찰은 스토킹처벌법이 시행된 2021년 10월 21일부터 통계를 집계 중인데, 그해 11, 12월 월 평균 50명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크게 증가한 수치다.

노인 세대 특성을 반영한 사건도 속속 보고되고 있다. 80대 남성 C씨는 6개월간 자신을 돌본 50대 여성 요양보호사를 스토킹하다 7월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그는 여성이 일을 그만두자, 159회에 걸쳐 집 문을 두드리고 문자메시지나 전화 통화를 시도했다. 9월 강원 홍천군에서는 60대 남성이 노인복지시설에서 알게 된 70대 피해자를 스토킹한 뒤 접근금지 명령을 받자 "때려죽인다"고 협박해 실형을 받은 일도 있다.

노년층 스토킹이 더 심각한 건 가해자가 인지능력이 떨어지거나 사회 변화상을 제대로 체감하지 못해 중대 범죄로 인식하지 못할 때가 많다는 점이다. 맞춤식 대응이 요구되는 이유다. 김대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박사는 "고령화로 스토킹 범죄가 느는 건 불가피한 추세"라며 "노인들은 스토킹이 범죄인 줄 모르거나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사람 없다'는 식의 관행적 판단을 한다"고 설명했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스토킹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는 점을 주지시키는 한편 정서적 지원도 이뤄질 필요가 있다"면서 "노년 피해자 역시 가부장 문화의 영향 등으로 신고를 꺼릴 수 있는 만큼 적극적으로 피해 사실을 알릴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현정 기자
박시몬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