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견 ‘라온이’(페키니즈∙10) 보호자 이수진 씨가 동그람이에 한 말입니다. 라온이는 2015년부터 서울 성산동 우리동생동물병원을 쉬지 않고 찾는 친구입니다. 라온이가 이렇게 ‘장기 치료’를 받는 근본적인 원인은 피부입니다. 김희진 우리동생 원장은 라온이의 상태에 대해 “어릴 때부터 귀를 비롯해 피부 전반에 문제가 많아 가려움증을 느끼는 게 일상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가려움증이 심하다 보니 눈 주변을 긁다가 각막이 손상을 입는 일도 있었다”고 덧붙였습니다.
사실 이건 라온이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페키니즈 품종이 대부분 이렇게 피부 문제를 안고 산다고 하는데요. 김 원장은 “페키니즈, 시추에게서는 피부병이 많이 발생하는데 그중에서 알레르기와 아토피가 많이 나타난다”라며 “과거 인기가 있었던 견종들은 동종교배를 많이 하는 만큼 면역성 질환이 많은 까닭”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래도 김 원장은 “라온이는 다른 페키니즈 품종 반려견에 비해 그나마 괜찮은 편”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수진 씨를 “라온이에게 굉장히 헌신적인 분”이라고 표현하며 관리를 열심히 해 주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피부병은 질병 특성상 병원에서의 진료만큼이나 중요한 게 집에서의 관리입니다. 수의사들은 피부병은 홈 케어가 치료의 절반 이상이라고 설명할 정도죠. 김 원장은 “페키니즈의 경우 피부에 주름이 많아 주름 사이사이에 습진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며 “주름 사이사이를 잘 닦아주고, 잘 말려줘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수진 씨는 어떻게 라온이를 돌보고 있었을까요?
8년 전, 라온이는 경기 용인시의 한 유기동물 보호소에서 지내고 있었습니다. 당시 반려견 입양을 고민하던 수진 씨는 어두운 보호소 철장 안에서 홀로 웅크려 있던 라온이를 마주하게 됐습니다. 당시 라온이의 모습은 관리가 잘되지 않아 피부 곳곳에 상처가 있었고, 주름진 탓에 나이도 들어 보였다고 합니다.
'나를 만나기 전 무슨 일이 있었을까'를 묻는 수진 씨의 말이 그제야 이해됐습니다. 그저 길을 헤매다 구조됐다는 기록만 있을 뿐, 라온이의 과거를 알 길은 전혀 없었습니다. 누군가 페키니즈를 키우려다가 버린 것인지, 아니면 페키니즈의 인기가 떨어져 번식장에서 방치되다 버려진 것인지, 라온이의 과거를 놓고 여러 추측이 나왔지만, 그저 추정에 불과할 뿐이었습니다.
분명한 것은 라온이가 유기견으로 살면서 꽤 오랫동안 고통스러움을 참고 살아야 했다는 점입니다. 라온이의 몸 곳곳은 성한 곳이 없었습니다. 피부는 물론이고 앞다리도 굽어 있어 똑바로 걷지 못하는 상태였습니다.
성한 곳이 없어 보이는 라온이였지만, 수진 씨는 입양을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다리는 어쩔 수 없더라도, 피부만큼은 어떻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며 입양 당시의 마음가짐을 말했습니다. 수진 씨의 자신감에는 나름 근거가 있었습니다. 그의 직업이 ‘반려견 미용사’여서 그랬습니다. 김 원장은 “보호자의 헌신적인 관리에 더해 반려견 미용사라는 전문성도 라온이의 상태 개선에 한몫했다”고 말했죠.
그럼에도, 그 과정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라온이 피부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은 아토피와 식이 알레르기. 단순 감염으로 발생하는 게 아닌 만큼 꾸준히 아토피 약도 먹어야 하고, 알레르기의 원인이 되는 식재료도 찾아야 했습니다. 우선 아토피 약은 그 비용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아토피 약은 한 알에 4,000원. 매일 한 알씩 먹어야 하니 산술적으로 1년에 약 값으로만 146만원을 지출해야 했습니다.
식이 알레르기가 있는 만큼 알레르겐(알레르기 원인물질)도 찾아야 했습니다. 동물병원에서 찾아낸 라온이의 알레르겐은 오리고기와 닭고기였죠. 김 원장은 “보통 알레르겐은 단백질인 경우가 많고, 특히 가금류에서 나오는 단백질이 많다”고 설명했습니다. 라온이 피부를 관리하기 위해 다른 때는 관대하던 수진 씨도 먹을거리 앞에서는 ‘단호박’이 된다고 해요. 그는 “안 되는 건 딱 잘라서 안 된다고 한다”며 “특히 라온이는 골격계도 좋은 편이 아니라 살이 쪄서는 안 되는 까닭에 더욱 냉정해져야 했다”고 말했습니다.
약을 복용하고, 피해야 할 음식도 찾은 뒤에는 수진 씨의 전공이 빛을 발했습니다. 언제 피부에 문제가 생길지도 모르는 라온이를 위해 그는 매일 아로마 오일을 피부에 발라준 뒤 마사지를 해준다고 합니다. 평소 라온이는 피부를 만지려 하면 예민한 반응을 보이지만, 이때만큼은 얌전해진다고 하네요. 수진 씨는 “라온이가 다리와 허리도 좋은 편이 아니라 근육도 풀어줄 겸 마사지를 해 주는데 이때만큼은 편하게 엎드려서 마사지를 받는다”고 설명했습니다.
라온이는 10살을 넘기고부터는 아픈 곳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시각도 점점 안 좋아지고 있고, 안구건조증 때문에 안약도 처방받았다고 하네요. 평소에도 안 좋았던 다리 탓에 산책을 나가도 공원 벤치에 앉아 있는 시간이 더 길어졌습니다. 그런 라온이가 좀 더 편안하게 지낼 수 있도록 거실에 2층 침대를 마련해 라온이가 홀로 지낼 수 있는 시간을 늘려주기도 했습니다. 예민한 라온이에게 맞춤 미용을 하느라 수진 씨는 퇴근한 뒤에도 다시 가위를 들기도 하죠. 그는 라온이처럼 피부가 좋지 못해 ‘셀프 미용’을 해야 하는 보호자들에게 “중요한 건 반려견이 가장 편안해하는 자세를 찾아야 한다”며 “미용을 목적으로 하기보다 꼭 필요한 부분만 정리를 하고 빨리 끝낸다는 마음을 먹는 게 좋다”고 조언하기도 했습니다.
하루 종일 남의 반려견의 털을 관리하다 라온이 건강까지 돌보면 지칠 법도 하지만, 수진 씨는 여전히 라온이를 돌보는 게 좋다고 합니다. 앞으로도 라온이의 삶의 질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데 힘쓰고 싶다고 하네요.
수진 씨의 목소리에서 ‘진짜 사랑’이 느껴지는 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