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간 일시적 교전 중지·인질 석방 합의를 다룬 기사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국가가 있다. 카타르다. 중동의 패권을 두고 경쟁하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아랍에미리트(UAE) 사이에 낀 경기도 면적의 작은 국가가 국제 정세를 뒤흔드는 사안에 중재자로 나선 것이다.
25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카타르가 이스라엘과 하마스 갈등에서 역할을 하게 된 배경이 셰이크 모하메드 빈 압둘라흐만 알타니 총리 겸 외교장관을 내세운 국가 차원의 ‘중재 외교’에 있다고 봤다. FT는 알타니 총리를 “위기가 낯설지 않은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극단주의 세력을 지원하고 이란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는 이유로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UAE, 바레인 4개국이 카타르와 단교하기 직전인 2016년 외교장관이 된 그는 시작부터 위기를 헤쳐 나가야 했다.
알타니 총리가 장관에 취임한 직후엔 1980년생 젊은 장관의 능력을 의심하는 시선이 있었지만, 이내 해소됐다. 그는 2021년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재집권 당시 미군 철수, 올해 9월 미국과 이란의 포로 교환, 미국과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비밀회담 등을 성사시키는 과정에서 미국이 ‘악의 축’이라고 여기는 세력들과 대화를 주선했다. 서방의 한 외교관은 FT에 “알타니 총리는 기회와 위험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낸다”고 말했다.
알타니 총리가 이런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건 '모두의 친구이지만 누구의 친구도 아닌' 카타르의 입지 덕분이다. 중동의 강국 사이에 위치한 인구 270만 명의 작은 나라인 카타르는 철저히 실용적인 외교 노선으로 생존을 도모했다. 국가에 이익이 된다면 그 누구와도 손을 잡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천연가스 수출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해 앙숙이던 시아파 종주국 이란과 화해한 것이 대표적이다.
카타르에는 중동에서 가장 큰 규모의 미군기지뿐 아니라 하마스 정치사무소, 하마스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의 집,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의 정치사무소가 동시에 있다. AFP통신은 “카타르는 서방과 우호적인 관계를 이어가면서도 급진적인 세력과도 대화할 수 있도록 신중한 균형을 유지했다”고 짚었다.
이러한 역사가 누적돼 카타르는 미국 이스라엘뿐 아니라 하마스와 직접 소통이 가능한 전 세계적으로도 드문 국가가 되면서 이번 일시 휴전 협상에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다만 중재자 카타르의 위상이 높아질수록 위험 요소도 늘어난다는 분석도 있다. 중동국제문제협의회의 타리크 유세프는 “중재자의 역할은 카타르의 지위를 확고히 하는 동시에 국가를 정치적인 위험에 노출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분쟁의 한복판에 뛰어든 이상 마냥 안전한 위치에 있을 순 없다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