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의 한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에서 만취 상태로 운전을 하다 초등학생을 치어 숨지게 한 40대가 2심에서 감형받았다. 하나의 행위가 여러 죄에 해당된 사건이기에, 가장 무거운 죄에 규정된 형량 하나만 적용해야 한다는 논리 때문이다.
서울고법 형사7부(부장 이규홍 이지영 김슬기)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어린이보호구역치사와 위험운전치사·도주치사 등 혐의로 기소된 고모(41)씨에게 24일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앞서 징역 7년을 선고했던 1심보다 형량이 2년 줄었다. 재판부는 "대낮에 초등학교 앞에서 자녀가 음주운전 차량에 치어 사망하는 일을 겪은 유족은 헤아릴 수 없는 슬픔에 시달리고 있다"며 "어린이 보호구역에서의 음주운전 사고는 엄히 처벌해 근절할 필요가 크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형량이 줄어든 이유는 고씨에게 적용된 특가법상 어린이보호구역치사와 위험운전치사 혐의가 상상적 경합 관계(하나의 행위가 여러 죄에 해당)에 있다고 재판부가 봤기 때문이다. 1심은 두 혐의가 별도로 성립(실체적 경합관계)한다고 보고 형을 가중했으나, 2심 재판부는 이보다 낮은 양형기준을 적용했다. 상상적 경합은 가장 무거운 죄의 형량으로 처벌하고, 실체적 경합은 가장 무거운 죄 형량의 2분의 1을 가중해 처벌한다.
재판부는 고씨가 재판 과정에서 유족 동의 없이 법원에 수억 원대 금액을 '기습 공탁'한 점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엄벌을 탄원해도 공탁 사실이 유리한 양형요소로 고려될 수 있는지 논란이 있고,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본다"면서도 "제도가 미비한 현 상황에서는 피고인의 노력과 반성의 진실성 등을 모두 참작해 공탁 사실을 매우 제한적으로 고려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선고 후 한동안 법정을 떠나지 못한 초등생의 아버지는 취재진에 "음주운전 사고로 아이가 사망했는데 5년이라니 믿을 수가 없다"며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알 수 없고, 법원이 안전한 세상을 만드는 시민들의 요구를 얼마나 경청하고 고민하며 노력을 기울이는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탄식했다. 이어 "포기하지 않고 정의가 이뤄질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하겠다"고도 덧붙였다.
고씨는 지난해 12월 2일 강남구 청담동 초등학교 후문에서 귀가하던 초등학교 3학년 학생을 차로 치어 숨지게 한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사고 당시 고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128%로 면허취소(0.08% 이상) 수준을 웃도는 상태였다.
검찰은 고씨가 사이드미러 등으로 사고를 인식할 수 있었음에도 그대로 차량을 몰아 도주했고, 이에 따라 피해자가 방치됐다며 도주치사 혐의를 적용했다. 그러나 1심에 이어 이날 2심도 "피고인이 현장에 돌아와 체포 전까지 현장을 떠나려 하지 않았고 자신이 가해자임을 밝히고 음주 측정에도 응했다"며 도주치사 혐의는 무죄로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