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수사하다가, 각종 개인비리 의혹 탓에 도리어 수사 대상이 되고 만 이정섭 검사(현 대전고검 검사 직무대리). 위장전입, 골프장 편의 제공, 범죄이력 조회 등 여러 의혹이 있지만, 모든 사건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주요인물이 있으니, 바로 이 검사의 처남 조모(43)씨다.
조씨는 매형(이 검사)과 조카(이 검사 자녀)를 자기 집에 전입시켜 주었고, 매형이 다른 검사들로부터 골프장 예약 부탁을 받는 것을 도와줬다는 의혹을 받는다. 이 검사가 범죄이력을 확인해준 것으로 알려진 대상도 바로 처남이 조회를 부탁한 사람들이었다.
이 의혹이 전부가 아니다. 지금 가장 베일에 싸인 사건은 바로 조씨의 '대마 흡입' 관련 부실·늑장수사 논란이다. 조씨의 대마 흡입 의혹을 경찰에 신고하며 외부에 알린 당사자는 조씨의 아내(이 검사의 처남댁) 강모씨다. 강씨는 "아이 고모부(이 검사)가 남편의 마약류 사건을 무마해 준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위장전입까지 시켜주며 평소 각별한 부탁을 주고 받았던 두 가족(이 검사, 처남)의 관계를 고려할 때 강씨 주장을 터무니 없는 의혹 제기로 치부하기는 어렵다.
한국일보는 △강씨의 증언 및 당시 사건 기록 △복수의 마약 수사 관계자들과의 전화인터뷰 △마약 수사 및 형사소송법 절차에 능통한 법조계 관계자들의 조언 등을 통해, 이 검사 처남 조씨의 마약류 의혹 사건 및 수사 과정을 복기해 봤다.
사건의 시작은 올해 2월이다. 지난해 말 가정폭력 혐의로 남편 조씨를 신고한 뒤 친정에 머무르던 강씨가 자녀 개학 준비를 위해 서울 역삼동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와보니 현관 잠금장치(도어락)가 바뀌어 있었고 벨을 눌러도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당시 강씨는 112에 신고를 했다.
당시 남편 조씨는 집 안에 있으면서도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고 한다. 강씨는 출동한 경찰관에게 "남편이 평소 마약을 했다"고 진술했고, 경찰관은 조씨에게 소변 임의제출(자발적 제출)을 요구했다. 조씨는 당초 검사에 응하겠다고 했으나 마약 담당 형사들이 집에 도착하고 본가 가족들과 전화로 상의한 뒤, 돌연 임의제출을 거부했다. 영장을 미리 발부받지 않았기에, 경찰관들은 내부 상의를 거친 뒤 소변 검사 없이 집에서 철수했다.
결국 강씨는 다음날 수서경찰서에 조씨를 대마 흡입 혐의로 고발했는데, 경찰은 그로부터 4개월 넘게 지난 6월21일에야 조씨 사건을 무혐의로 종결했다.
이상이 조씨 마약류 의혹 사건의 기본 전개 과정이다. 여기서 가장 미심쩍은 부분은 마약류 검사가 112신고 100일이나 지나서야 이뤄졌다는 점이다. 대마 흡입 사건은 통상 5일에서 10일 내에 검사하면 대부분 적발할 수 있지만, 검사 시점이 늦어질수록 정확도는 떨어진다고 한다.
강씨는 조씨가 2월5일 대마를 흡입했다고 주장하는데, 경찰이 조씨의 소변과 모발을 임의제출 받은 날은 5월19일. 세 달 보름이 지난 시점이다.
강씨가 제출한 고발장을 보면, 신고(2월6일) 직후인 2월 7일 조씨는 머리와 눈썹을 탈색한 채로 귀가했다고 한다. 마약 수사를 잘 아는 한 법조계 관계자는 "석달 간 탈색과 염색을 반복했다면 마약을 했어도 검출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며 "이 수사에서 시기를 놓친 측면이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고 평가했다.
그렇다면 경찰은 왜 수사에 늦게 착수했을까? 경찰의 해명은 '인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경찰은 그 즈음 강남 한복판에서 납치된 여성이 숨진 채 발견되는 '강남 납치살인 사건'(3월29일 발생)이 발생하는 바람에, 이 사건에 투입할 사람이 없었다고 해명했다. 강남 납치살인 사건 관할 경찰서가 바로 조씨 사건이 접수된 수서경찰서다. 인근 지방경찰청까지 투입되는 대대적인 수사가 이뤄지면서 수서경찰서 마약수사팀도 이 사건에 매달려야 했다. 결국 조씨 마약류 사건은 납치·살인 일당이 구속송치(4월13일)된 이후에야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됐다.
수서경찰서 측 해명은 이렇다. 경찰 관계자는 "마약 사건 수사가 다소 늦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당시에는 급박하게 돌아가던 납치살인 사건이 최우선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요즘은 탈색 등 방법으로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정밀 검사를 피해 가기는 어렵다"며 "6개월 이상의 마약 투약을 검증할 수 있는 정도의 모발을 국과수에 보내 감정에서 음성이 나온 만큼 사건 처리에 문제는 없었다"고 강조했다.
경찰의 해명을 다 받아들이더라도 석연치 않은 점은 남는다. 최초 112신고(2월 6일)부터 강남 납치·살인 사건(3월29일)까진 한 달 보름 정도의 시간이 있었다. 마약 검사에 많은 수사 인력이 필요한 것도 아닌데, 경찰이 2월이나 3월 조씨를 소환했다면 명쾌하게 결론이 날 수 있는 사건이었다. 하지만 경찰은 4월27일에야 조씨에게 처음으로 소환을 통보했다. 최초 신고일로부터 이미 세 달 가까이 지난 시점이었다.
112 출동이 이뤄진 2월 6일 저녁 역시나 이 사건을 규명할 수 있는 기회였다. 당시 강씨는 남편이 집 안에서 마약을 한 것으로 의심하면서 "(과거) 남편이 마약류 같은 약물을 흡입한 것을 본 적이 있다"(112 기록)거나 "마약을 한 뒤 나를 폭행했다"(2차 조서)고 경찰에 진술했다. 하지만 경찰은 조씨가 임의제출을 거부하자 강제수사를 시도하지 않고 철수했다.
강씨는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당시 남편이 마약에 취한 듯한 모습이었다"며 "경찰관들이 처음에는 반드시 소변검사를 해야 한다고 했지만, 어딘가로부터 전화를 받은 뒤 '임의제출해주지 않으면 더 이상 조사할 수 없다'며 철수했다"고 주장했다.
강씨는 이 지점에서 이 검사의 개입이 있었을 가능성이 규명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검사가 모종의 영향력을 행사했거나, 적어도 조씨에게 '임의제출을 하지 말라'고 얘기해 줬을 개연성이 있다는 것이다. 강씨는 "아이 고모부(이 검사)는 평소 남편과 여러 민원을 주고받는 친한 사이였고 가족 중에 법조인은 고모부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후 발생한 이 검사 부인의 대응도 이런 의심을 높이는 정황이라고 한다. 강씨는 "112에 신고한 날 자정쯤 길 건너에 사는 시누이(이 검사 아내)가 찾아와 '왜 동생을 (마약) 신고했냐'고 항의했다"며 "신고 당시부터 고모부가 관련 내용을 알고 있었다는 증거"라고 덧붙였다.
형사법 전문가들도 112 신고 당시 현장대응이 적극적이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한다. 형사소송법은 '범행 중 또는 범행 직후의 범죄 장소에서 긴급을 요해 법원판사의 영장을 받을 수 없는 때에는 영장 없이 압수, 수색 또는 검증을 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경찰이 출동한 곳이 마약류 투약 현장이고 마약류가 폭행으로 이어진 정황도 있다면, 현행범 체포나 강제 압수가 가능하다"며 "증거의 위법한 수집이 걱정됐다면, 영장을 신청하면 됐을 일"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나 당시 영장 신청은 이뤄지지 않았다.
다만 경찰은 출동 당시 조씨의 모습이 마약류에 취한 것이라고 보기 어려웠고, 현장 증거도 부족했기 때문에 영장 없는 압수수색은 불가능했다는 설명이다. 수서경찰서 관계자는 "마약 수사관들은 마약류에 취한 사람을 대번 구분한다"며 '마약에 취해 있었다'는 강씨의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어 "가능한 범위에서 현장 수색을 진행했으나 대마와 관련한 증거도 나오지 않아, 당사자 동의 없이 마약류 검사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세 번째 의혹은 마약류 범죄의 물증이 제대로 인정되지 않은 점이다. 강씨는 신고 이후 경찰에 여러 직간접 증거를 제출하면서, 조씨가 액상 대마를 필 때 사용했다는 연무기(전자담배 기계)도 함께 넘겼다. 이 증거에 대해 강씨는 "2022년 9월 (액상대마를 흡입하고) 집 화장실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 호주머니를 뒤져 찾아낸 것"(1차 조서)이라고 주장했다. 기계 카트리지 부분에 액상 대마가 남아 있고 흡입구에 조씨 유전자정보(DNA)도 남아 있을 테니, 국과수 감정을 맡겨달라는 게 강씨의 주장이었다.
하지만 경찰은 '소유자(조씨)가 동의하지 않은 증거 제출'이라며 연무기를 국과수 보내지 않았다. 강씨가 조씨 몰래 취득해 제출한 물건인 만큼 소유자 의사에 반하는 '위법 수집 증거'에 해당하고, 압수 영장을 신청하기엔 범죄 정황이 부족하다는 이유였다. 경찰 관계자는 "국과수 직원이 변호인을 대동하고 온 고발인(강씨)에게 직접 전화로 충분히 설명드렸다"고 답했다.
이 부분에선 형사법 전문가들의 의견이 다소 엇갈린다. 마약 사건을 많이 다뤄본 한 변호사는 "마약처럼 소유 자체가 금지된 물건이었다면 몰라도, 담배 등 다른 용도로 쓰일 수 있는 기계였다는 점에서 임의성(조씨의 동의) 확보가 필요하다고 본 것 같다"고 설명했다. 다른 법조인은 "경찰이 의지만 있었다면 강제수사를 할 수 있는 사안으로 보인다"면서도 "경찰의 수사 절차를 문제 삼긴 부족하다"고 말했다.
강씨는 이것(전자담배) 말고도 증거는 차고 넘친다고 주장한다. 강씨가 경찰에 낸 증거 중에는 △시댁 가족들과 남편의 대마 중독 대책을 논의하는 카카오톡 대화 내용 △남편 휴대폰에서 찾아낸 공급책 연락처와 대화 내용 △약에 취한 듯한 남편의 모습이 담긴 동영상 등이 있었다. 조씨가 2019년 3월15일 '대마초를 피지 않는다'고 한 각서(서명 없음)도 냈다. 경찰 조사에선 "남편이 지속적으로 마약을 하고 있다"며 총 다섯 차례의 대마 흡입 시점을 특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경찰은 아내 강씨의 진술과 여러 정황 증거를 보고도, 조씨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단 한 차례도 신청하지 않았다. '강제수사에 나설 만한 범죄 단서는 아니다'라고 결론 내린 것이다.
이에 대한 경찰의 설명은 '근거가 약하다'는 것이다. 우선 경찰은 강씨가 고발장에 특정한 대마 흡연의 경우, 모두 "대마에 취한 것 같은 모습을 봤다"는 것일 뿐 대마 흡입 자체를 직접 목격한 것은 아니라고 봤다. "상하이, 동남아 여행 등에서 대마초 피우는 것을 직접 봤다"는 진술도 범행 시점이 약 7년 전인 데다 압수수색영장을 받을 정도의 신빙성은 없다고 판단했다. 결국 경찰은 강제수사가 아닌 임의수사를 택했고, 다소 늦은 국과수 검사 결과를 토대로 사건을 무혐의 종결했다.
수사경찰서 관계자는 "누가 마약을 했다고 주장하거나, 마약 공급책으로 보인다며 번호를 제출하는 경우는 상당히 많다"며 "(압수수색 영장 신청 등) 강제수사를 위해선 그 이상의 범죄 정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모든 수사는 임의수사가 원칙이고 무리하게 수사를 했으면 오히려 비판받았을 사건"이라고 말했다. 또 "친인척 중 검사가 있다고 해서 경찰이 봐줄 이유는 없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고발인 강씨가 조씨와 부부관계였던 점 △마약류 유통이 아닌 단순 흡입에 대한 신고였다는 점 때문에, 경찰이 소극적으로 수사할 수밖에 없었다고 분석한다. 당시 강씨는 조씨를 상대로 접근금지를 신청하는 등 법적 다툼(현재 이혼소송 중)을 하는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경찰이 강씨의 일방 진술만 믿고 강제수사를 하긴 어려웠다는 것이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이혼 소송 중 상대방의 마약을 신고해 문제 삼는 사례가 종종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경찰이 통상적으로 가족 내 갈등 사건에서 적극적이지 않다는 점도 지적됐다. 다른 법조계 관계자는 "경찰은 부부싸움 등 가정 내에서 발생한 사건에 소극적인 면이 있다"며 "단순 투약사범인 만큼 임의수사로 방향을 정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밖에 강씨는 단순 대마 흡입 사건에 여섯 차례나 수사관이 교체됐다는 점도 문제 삼았다. 이에 대해 경찰은 △경찰 정기 인사 △고발인(강씨)의 교체 요구 △수서경찰서 내 마약 전담 수사팀 신설 등으로 세 차례 수사관이 교체된 것은 맞지만, 나머지는 팀내 담당 수사관 지정 등 알림을 오해한 것이라는 취지로 답했다.
이상 살펴본 의혹에서, 이 검사 처남의 마약류 투약 의혹 수사를 담당한 경찰 측은 "강제수사를 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 아니었고, 수사가 늦게 진행된 명백한 이유가 있다"고 해명하고 있다. 다만 그런 경찰의 해명을 모두 받아들인다고 해도 ①마약검사 지연 ②소극적인 112 현장 대응 ③마약류 증거 불인정 ④영장 신청을 하지 않은 소극적 수사 ⑤잦은 수사관 교체 등의 변수가 어떻게 이 사건에서만 '연속적으로' 나타날 수 있었느냐는 점은 여전히 논란거리다.
현재는 주요 수사 대상이 아니지만, 이 검사 처남의 마약류 의혹 및 늑장 수사 의혹 역시나 검찰의 수사 대상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 검사에 대한 수사에 착수한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검찰 간부의 비위 의혹인 만큼 고발장에 적시된 내용 외에도 제기된 모든 의혹을 전반적으로 살펴볼 것"이라며 의지를 내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