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반에 생각한 건 '틸러'와 '퐁' 모두 누구에게 상처를 주거나 실망시키지 않으려는 좋은 사람들이라는 점입니다. 인간의 잠재력을 믿는다는 점에서 두 사람은 낭만주의자죠. 그게 이 소설의 메시지 중 하나예요."
한국계 미국 작가 1세대로 불리는 이창래(58)의 장편소설 '타국에서의 일 년'이 최근 한국어판으로 출간됐다. 전작 '만조의 바다 위에서'(2014) 이후 7년 만인 2021년 미국에서 발표했던 작품. 주인공은 '8분의 1 아시아계'인 20대 틸러다. 그는 백인 부유층이 주류를 이루는 지역(던바)에서 자라면서 미묘한 소외감을 느끼고, 어머니가 떠나고 홀로 자신을 키워준 아버지와도 깊은 감정적 교류를 하지 못하는 청년이다. 소설은 늘 부유하듯 살던 그가 우연히 만난 중국계 미국인 사업가 퐁을 따라 중국 선전, 마카오, 홍콩 등에서 치열한 도전의 시간을 보내고 가까스로 미국으로 돌아오기까지의 여정을 다룬다.
이창래 작가는 최근 한국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현대적 모험담"을 쓰고 싶었다며 집필 동기를 밝혔다. 그의 소설 중에 드물게 동시대 젊은 청년을 주인공으로 삼은 것도 이런 이유다. 동서양을 넘나드는 틸러는 비즈니스 세계에서 점점 복잡한 문제에 휘말린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또 이 삶과 세계에서 무엇을 찾고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분투한다. 그리고 세상에 치이고 고꾸라져도 비극도 낙관도 아닌 그저 나아가는 삶이 펼쳐진다. 작가는 "젊음의 갈망, 그 발견 과정에서 얻는 때로는 어렵고 고통스러운 '지혜'를 소설로 쓰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 세상과 세상의 가능성을 사랑하는" 틸러와 퐁, 두 인물은 모험담을 통해 작가가 전하려던 메시지 그 자체다.
신작은 전작들과는 결이 조금 다르다. 한국계 이민자로서 방황하는 인물이 나오는 첫 소설 '영원한 이방인'(1995), 위안부 문제를 다룬 '척하는 삶'(1999), 한국 전쟁의 비극을 그린 '생존자'(2010) 등은 한국과 이민자라는 작가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보여주는 작품들. 그에 비해 이번 소설은 보다 현대적이고 보다 보편적이다. 이 작가는 "소재와 스토리가 확실히 달라졌다"고 수긍했지만 자신의 시선이 머무는 곳은 변함없다고 말한다. 그는 "항상 그리고 오직 이 삶의 곤란한 진실과 지속되는 아름다움을 모두 보여줄 수 있는 이야기와 인물을 쓰고 싶었다"며 "글을 쓸 때마다, 한 문장에서 다음 문장으로 넘어가면서 심리, 이야기, 언어 측면에서 그런 부분에 최선의 관심을 기울인다"고 설명했다.
약 30년 사이 정말 달라진 건 현지 문단과 독자다. 척박한 땅(미국 문단)에 그가 일군 한국계 작가라는 텃밭에 이제는 권오경 한요셉 김주혜 등 후배 작가들이 열매를 맺고 있다. 그는 이 작가들의 롤모델이다. 작가는 "정말 멋진 일"이라며 뿌듯함을 숨기지 않았다.
한국이라는 뿌리를 자랑스럽게 여긴다는 점을 항상 강조했던 그는 "여기(미국) 독자들이 더 많은 목소리를 갈망할 것"이라며 기대감도 드러냈다. 그 역시 부지런히 쓰고 있다. "뉴욕에서의 어린 시절을 다룬, 자전적인 내용이 일부 포함된 소설 집필을 거의 끝냈습니다." 머지않아 이창래 작가의 일곱 번째 소설을 만날 수 있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