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간 약 20곳에 지원했지만 대부분 최종에서 떨어졌다.”
권력형 성폭력 사건 피해자를 도운 조력자에겐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안희정 성폭력 사건’ 피해자 김지은 전 충남지사 수행비서의 손을 처음으로 잡아준 동료 문상철(40) 전 충남지사 비서관이 그 시간을 기록한 책 ‘몰락의 시간’(메디치)을 22일 출간했다. 권력형 성폭력 사건 피해자를 가까이서 도운 사람의 서사가 공개되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문 전 비서관은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측근이었다. 2011년 충남지사 비서실 메시지와 여론조사 담당 비서관으로 시작해 장기 대선 전략인 ‘안희정의 공부’ 프로젝트를 주도하고, 대선 후보 경선 준비 ‘코어팀’, 2017년 대선 후보 경선 수행팀장에 이르기까지 7년간 안 전 지사 지근거리에서 일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는 정치판을 떠났다. 어렵게 ‘미투’한 피해자의 첫 조력자였지만, 그렇기 때문에 배척당했다.
문 전 비서관은 정세균 국회의장실에서 일하던 2018년 2월 25일 김지은씨의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울먹이던 김씨는 “선배, 저 지사님께 성폭행을 당했어요. 도와주세요”라고 호소했다.
그 순간부터 문 전 비서관의 정치 인생이 뒤바뀌었다. “안희정을 통해 세상을 바꾸고 싶었던 지난 7년 여의 여정이 이렇게 허무하게 끝난다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웠다”라고 그는 책에 썼다.
피해자와 조력자가 싸워야 했던 상대는 가해자 1인이 아닌, 안희정이라는 권력을 중심으로 똘똘 뭉친 정치집단이었다. 일터도 그만둬야 했다. ‘음모성 지라시(정보지)’ 유통, 가족까지 거론하는 협박도 그가 감내해야 하는 현실이었다.
책의 전반부엔 ‘노무현의 뜻을 계승할 미래주자’였던 안 전 지사가 어떻게 권력에 취하고 그 카르텔에 잠식돼가는지 적나라하게 기술돼있다. “자신의 생각과 다른 이야기들을 먼저 청해 귀담아 듣던 초기와는 달리 점차 반대 의견에 불편함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더 철옹성 같은 의전을 원했다”고 문 전 비서관은 술회했다.
책에는 또 안 전 지사의 의전 중독, 여성 편력, 팬덤 정치의 폐해, 해외 방문 때마다 접근해오는 외국 로비스트, 선거판이 불리하게 흘러가자 역술인들까지 찾게 된 과정 등도 나온다.
여론조사 연구원이었던 문 전 비서관이 정치판에 들어온 이유는 정치가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도구라고 믿어서다. 그랬던 그는 ‘안희정 사건’을 겪으면서 안희정이라는 정치가, 자신이 믿었던 미래가 몰락하는 과정을 목도했다. 그러나 거기서 그치면 안 된다고 믿기에 이 책을 썼다. “가해자 한 명의 잘못으로만 여겨서는 안 된다. 구조적인 문제를 제대로 정의하지 않으면 우리는 제2, 제3의 안희정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이 같은 내용의 책이 출간된 것을 두고 안 전 지사의 생각을 들으려 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책의 주요 내용 관련 질문에 한 측근은 23일 “책 내용을 보고 판단할 일”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