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패혈증 치료를 위해 맞은 항생제에 내성이 생겨 사망한 신생아가 세계적으로 22만 명에 달합니다. 내성 문제를 해결할 새 치료법을 적정 가격으로 개발하려고 뜻을 모았습니다."
국제보건기술연구기금(라이트재단)과 제일약품, 글로벌 항생제 연구개발 비영리 국제단체(GARDP)가 21일 서울 여의도 IFC에서 만나 새로운 신생아 패혈증 치료제 개발의 첫발을 뗐다. 이 프로젝트를 위해 라이트재단은 GARDP와 제일약품에 각각 30억 원, 10억 원씩 총 40억 원을 지원하기로 지난 6일 계약을 맺었다. 이후 각사 책임자가 처음 공식적으로 만난 이날 이훈상 라이트재단 전략기획이사(CSO)는 "공공보건 증진이라는 목적에 한국 기업의 역할이 뚜렷하게 맞아떨어진 사례"라고 강조했다.
태어난 지 1~3개월밖에 안된 신생아 중 세계적으로 매년 약 300만 명이 세균이나 바이러스 감염 때문에 생기는 패혈증에 걸린다. 대개 위생 환경이 좋지 않은 중·저소득 국가에서 분만 과정 중 걸리는데, 항생제 투여 외에는 별다른 치료법이 없다. 문제는 기존 항생제에 내성이 생기는 경우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내성 때문에 더 이상 치료를 받지 못하고 사망한 신생아가 지난해에만 21만4,000여 명에 달한다.
GARDP는 항생제 내성 문제 해결을 위해 2016년 세계보건기구(WHO)가 설립한 비영리 조직으로, 2017년부터 중·저소득 국가에 항생제 내성을 해결할 새로운 치료법을 제공하기 위한 글로벌 임상시험을 추진 중이다. 새 치료법은 3가지 항생제(포스포마이신, 아미카신, 플로목세프)를 조합하는 방식인데, WHO가 지정한 신생아 패혈증의 1차 치료법(암페실린, 젠타마이신 함께 사용)을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 1차 치료법은 이미 세계 곳곳에서 내성균이 보고되고 있다.
세이머스 오브라이언 GARDP 연구개발 총괄책임자는 "케냐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임상 준비를 마쳤고, 내년 최대 16개국으로 임상 범위를 확대해 2029년쯤 개발을 완료, 2030년 이후 WHO의 사전적격심사 등을 거쳐 상용화하는 게 목표"라고 설명했다.
그간 감염병을 대상으로 공중보건에 필요한 연구개발을 지원해온 라이트재단은 GARDP의 임상에 30억 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라이트재단은 한국 정부(50%)와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25%), 국내 제약사 10곳(25%)이 투자해 2018년 국내에 설립됐다.
글로벌 임상에 필요한 항생제를 만들려면 다량의 원료의약품이 안정적으로 공급돼야 한다. 이를 위해 라이트재단과 GARDP가 선택한 기업이 바로 토종 제약사 제일약품이다. 제일약품은 국내에선 유일한, 세계적으로도 몇 안 되는 프로목세프 생산 원천기술 보유 기업이다. 2000년대 중반 항생제 원료의약품 시설을 확보한 뒤 인프라를 유지해온 덕에 세계 공중보건 프로젝트의 핵심 공급처로 떠올랐다.
제일약품은 이번 프로젝트를 계기로 중·저소득 국가에 대규모 공급을 위한 생산 효율화에 나선다. 전성현 제일약품 상무는 "향후 1년 반에 걸쳐 새로운 공정 기법을 생산시설에 도입해 최종 출고가격을 절반 이하로 낮출 것"이라며 "새로운 치료법이 상용화할 경우 수요 확대에 맞춰 증설도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훈상 이사는 "국제 보건 무대에서 한국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진 만큼, 한국 기업과 손잡고 국제 공공조달 시장에 진출할 수 있도록 지원을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