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법 의도보단 '법조문' 우선... 유추해석 멀리한 꼬장꼬장 조희대

입력
2023.11.21 04:30
10면
[대법관 때 소수의견 37건 전수분석]
법조문의 정확한 해석, 엄격한 판단을 강조
사회적 관심 큰 사안에선 '보수 평가' 불가피
문언주의로 기본권 보호 가능성 보여주기도

법 조항에 충실한 원칙론자인가, 보수적이고 경직된 엘리트 법관인가.

조희대 대법원장 후보자를 둘러싼 법조계의 평가는 둘로 나뉜다. 그는 대법원장 후보자 지명 후 "한평생 중도의 길을 걷고자 노력했다"며 자신에게 씌워진 보수 법관이라는 평가를 부인했다. 법원 내부에선 '늘 원칙에 충실하게 법 해석을 했다'는 평가가 많았지만, '그가 사법부 수장이 되면 법 바깥 현실에 둔한 사법부가 될 것'이라는 걱정도 적지 않았다. '보수'라는 부분에 이견이 없지만 '현실을 꾸준히 반영하려는 법관'인지에서, 의견이 갈린다.

법관은 말보다 판결로 말하는 법. 그래서 한국일보는 그가 대법관으로 재직한 2014~2020년, 전원합의체(법원행정처장을 제외한 대법관 전원이 심리에 참여)를 통해 드러난 사법철학을 분석했다. 양승태·김명수 대법원에서 남긴 총 37건의 소수의견(별개의견+반대의견)을 전수분석해 그가 추구하고자 했던 이념과 지향점을 추적했다.

법조문을 우선하는 문언주의자

조 후보자는 대법관 시절 '문언주의'의 수호자였다. 법에 나오지 않은 입법자의 의도와 입법 취지를 예단하기보단, 법조문에 적힌 그대로를 따르려 했던 경우가 많다는 얘기다. 37건 소수의견 중 '법 문언의 정확한 해석' 등을 언급한 경우만 17건으로 절반에 가까웠고, 기준을 넓혀 '범죄 구성요건의 엄격한 판단' 등을 내세운 사례까지 포함하면 70%에 달한다.

그는 특히 법의 확장해석을 통해 민·형사 책임을 넓게 물으려는 시도를 경계했다. 보이스피싱 계좌 대여자가 입금된 돈을 뽑아 쓰면 횡령죄를 물을 수 있다고 본 2018년 전원합의체 판결 당시, 조 후보자는 혼자 반대의견(다수의견과 다른 결론)을 냈다. 그는 "횡령죄는 위탁관계를 보호하는 재산범죄이므로 그 위탁관계는 원칙적으로 민법·상법 등에 기초해야 한다"며 "유죄는 규범적 판단(가치 판단)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돼선 안 된다"고 처벌에 반대했다.

보수주의로 나타난 원칙 중시 소신

사건의 경중을 가리지 않고 원칙론적 법 해석을 강조한 것은 결과적으로 '보수주의'라는 외관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 조 후보자는 2019년 여수·순천 사건 재심 청구를 인용한 다수의견에 반대하며 "인권유린과 학살 등이 있었다는 진실규명이 있고 그에 따른 역사적 평가가 이루어졌으나, 그것이 특정 개인의 구체적 범죄행위에 대한 증명을 대신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2019년과 2020년엔 엄격한 증명 책임 등을 내세워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씨의 뇌물 혐의 등에 연달아 무죄 의견을 썼다.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에서는 '법 해석에 관한 일반원칙'의 역사까지 짚어가며 "군대를 가지 않으려는 '정당한 사유'를 법이 명시하지 않은 양심의 영역으로 넓혀선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약자 보호 문언주의' 가능성

다만 그가 문언주의를 기득권 보호 방편으로만 쓴 것은 아니다. 2017년 '땅콩회항' 사건에서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항로변경 혐의를 유죄로 인정할 수 있다는 반대의견이 대표적이다. 그는 무죄로 결론 낸 다수의견에 반대하며, 표준국어대사전 설명과 비교되는 '항로'의 항공보안법상 의미를 주된 논거로 삼았다. 연장근로 수당 산정 시 휴일근로는 제외해야 한다고 본 2018년 전원합의체 판결에서도, 조 후보자는 "문언상 1주는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고, 근로기준법상 달리 해석할 근거가 없다"는 반대의견으로 노동자 손을 들어줬다.

조 후보자의 이 같은 판결 흐름을 두고 법조계에선 "큰 틀에서는 소극적 사법(정치 목표나 사회정의보다는 법의 문언적 해석을 중시)을 지지하지만, 개개인 삶의 '작은 정의'를 보장하려는 성향이 묻어난다"고 평가한다. 법적 안정성을 해칠 위험이 있는 판례 변경에는 인색하지만, 재판 당사자들의 권리 보호에는 신중하게 접근한다는 뜻이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후보자의 꼿꼿한 성정을 모두가 알지만, 역동적인 대법원을 기대하는 쪽에선 아쉬움이 나올 수 있다"며 "어떤 해석론을 내세우든 법관의 가치관·국가관에 대한 평가가 따라올 수밖에 없음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말했다.

이정원 기자
박준규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