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조이스의 작품집 ‘더블린 사람들’에 수록된 단편 ‘망자(The Dead)’는 영어로 쓰인 가장 아름다운 단편 중 하나라는 평을 듣는 작품이다. 나이 든 케이트와 줄리아 모컨 자매의 연례 크리스마스 파티의 밤. 초대된 이들의 대화와 에피소드, 노래와 회상 등이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 모를 그 파티의 기약 없는 운명 그리고 더블린 숲의 스산한 밤 풍경을 배경 삼아 묵직한 겨울 서정을 전하는 작품. 조이스는 거기에다 아일랜드 민족주의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과 가톨릭 전통주의의 회귀에 대한 미묘한 반감 등 시대-사회적 정서까지 거슬리지 않게 버무려 놓고 있다. ‘망자’는 서사의 아름다움 뿐 아니라 구성-형식으로도 단편소설의 한 전범이라 평가받는 모양이다.
‘더블린 사람들’이 1914년 출간됐으니 조이스가 저 작품을 쓰던 무렵의 바티칸 교황은 비오10세(1903~1914 재위)였다. 19세기말 교회 자유주의와 신앙 상대주의 풍조를 못마땅해 했던 비오10세는 재임 중 성무일도서 등 전례와 그레고리오 성가의 시대적 ‘변질’을 차단하기 위한 대대적인 개혁을 단행하며 신앙 상대주의를 ‘이단’의 징조라 공식적으로 규정했다. 즉위 3주 만인 1903년 11월 22일 발표한 교서 ‘목자의 역할을 다함에 있어’를 통해 교황은 미사 음악에 가미된 오케스트라 형식 등 현대적 변화를 배격하며 관악기와 타악기 등 오르간을 제외한 모든 악기의 사용을 원칙적으로 금지했다. 그럼으로써 전례의 그레고리오 성가와 르네상스 다성음악의 우월성을 천명했다. 성가대에서 여성을 배제한 것도 그 조치 중 하나였다.
‘망자’에는 케이트가 동생이 평생 봉사하던 성가대에서 쫓겨난 걸 분해하면서도 교황의 무오류설 때문에 대놓고 화내지 못하는 장면이 있다. “평생 노예처럼 봉사해온 여성들을 성가대에서 내쫓고(…) 교황이 그렇게 하는 게 교회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건 정의롭지 않고 옳지도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