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세계박람회(엑스포) 개최지 최종 투표를 일주일 앞둔 21일 2030 부산세계박람회 유치위원회와 정부, 대통령실은 막판 가속페달을 밟고 있다. 유치 레이스 초반 안정적인 표밭을 갖고 있던 경쟁 상대국 사우디아라비아(리야드)와 이탈리아(로마)의 기세에 눌려, 대통령실에서도 "우리가 너무 늦게 레이스에 뛰어들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대통령실과 관련 부처에선 "실제 판세는 박빙"이라는 판단이다. 판세 변화에는 민관의 역할이 컸다. 지난 9월 말 기준 정부 인사들이 엑스포 유치를 위해 이동한 거리는 850만 ㎞, 이 중 윤석열 대통령은 91개 국 455명의 고위급 인사를 만났고 유치위 공동위원장인 한덕수 국무총리도 92개 국, 153명의 인사를 만났다.
정부에선 한국의 거센 추격에 사우디가 표 관리에 들어갔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에 따라 우리 정부도 최종 투표일인 28일까지 민관이 하나 돼 막판 홍보전에 올인한다는 구상이다. 특히 유치위와 대통령실은 최근 사우디가 유럽과 함께 최대 표밭인 아프리카에 구애 메시지를 던진 것을 감안해 맞춤형 전략을 짜고 있다.
정부는 국제박람회가구(BIE) 회원국 중 대륙별 표가 가장 많은 유럽(49개 국)과 아프리카(49개 국)의 표심을 얻는 데 주력하고 있다. 최근 한 달간 정부 차원에서 공을 들인 나라들의 면면도 비슷하다. 한 총리는 지난달 프랑스 등 유럽 4개 국 순방에 이어 지난 12일 2박 4일 일정으로 프랑스 파리를 방문, 파리에 상주하는 BIE 회원국 대표들을 만나 최종 투표에서 부산 지지를 당부했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이달에만 두 차례 파리를 방문했고,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도 대통령 특사자격으로 이달 초 체코를 방문해 유치전을 폈다. 정부 관계자는 "네덜란드 등 우리를 지지하겠다고 밝힌 유럽 국가도 있지만, 인근 이탈리아와의 관계 때문에 선뜻 확답을 해주지 못하는 나라가 대다수"라며 "우리가 2차 결선투표에 갈 경우, 사우디와의 2파전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유럽 국가들의 표를 신경 써야 한다"고 말했다.
유럽이 2차 결선투표에서의 캐스팅보트라면 아프리카는 사우디와 한국이 표심을 얻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을 벌이는 대륙이다. 아프리카는 당초 오일머니를 앞세운 사우디에 몰표를 던질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으나 지난해부터 정부, 부산시, 장성민 대통령실 미래전략기획관 등이 아프리카를 찾아 '저인망식 홍보'에 나서면서 분위기를 반전시켰다는 평가다.
한 외교 당국자는 "아프리카에 인재와 기술을 중심으로 단기간에 성장한 대한민국의 경험과 노하우를 전달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는 호소가 통하면서 우리도 해볼 만하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전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많은 나라들이 한국을 경제발전의 롤모델로 여기는 분위기가 있다는 점이 고무적"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사우디가 최근 아프리카 국가들에 대한 수억 달러 규모의 차관 제공과 수출 지원을 약속하는 등 표심을 단속하고 있다는 외신 보도에 정부는 예의 주시하고 있다. 방기선 국무조정실장은 지난 13일부터 일주일간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베냉, 기니비사우 2개 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유치 도시 선정을 위한 최종 투표는 28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BIE 총회에서 이뤄진다. 지난달 기준 182개 BIE 회원국 정부가 지정한 대표들이 파리에서 표를 행사하는 방식이다. 익명 투표인 데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들의 투표로 결정되는 올림픽과 달리 회원국 정부를 대표해 투표자가 특정되지 않기 때문에 현장 변수도 클 수 있다는 전망이 많다.
지난 6월 파리 BIE 총회에서 영어 프레젠테이션(PT)에 나섰던 윤 대통령이 23일 5개월 만에 다시 프랑스 파리를 찾아 막판 유치전에 나서는 이유도 투표장 민심을 잡기 위해서다. 정부는 윤 대통령이 직접 연사로 나선 BIE 4차 총회 PT 못지않게 28일 투표 직전 진행되는 5차 PT에도 총력을 다할 계획이다. 연사로는 국제사회에서 상징성을 갖고 있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등이 나서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사우디가 2034년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 개최지로 사실상 선정된 것과 관련한 국제사회 여론 동향도 예의 주시 중이다. 오일머니를 앞세워 2029 동계 아시안게임, 2034 FIFA월드컵에 이어 2030 엑스포마저 유치하는 것에 대한 '독식론'이 제기될 경우 우리에겐 나쁘지 않을 것이란 판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