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코스트 죄책감→이스라엘 지지 안 돼"... 튀르키예, 독일 면전서 직격

입력
2023.11.19 16:20
12면
에르도안, 5년 만에 독일 국빈 방문
숄츠 총리와의 공동기자회견서 비판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 이견만 노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이 5년 만의 독일 국빈 방문에서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 죄책감 때문에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건 합리적이지 않다'는 취지로 말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의 면전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간 전쟁에 대한 독일 정부 입장을 정면 비판한 것이다. '친(親)이스라엘' 독일과 '반(反)이스라엘' 튀르키예가 장외전을 벌인 듯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독일 총리실 발표와 현지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17일(현지시간) 독일 수도 베를린에서 만난 숄츠 총리와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과 관련해 극심한 의견 차를 보였다. 특히 이스라엘에 대한 양국 입장이 극명히 엇갈렸다.

숄츠 총리와 공동기자회견장에 나란히 선 에르도안 대통령은 "(지금의 전쟁을) 죄책감에 근거해 판단해선 안 된다"고 밝혔다. 앞서 "홀로코스트 책임이 있는 한, 이스라엘의 존립과 안전을 지지하는 것은 독일의 의무"라고 했던 독일 정부 방침은 비합리적이라고 지적한 셈이다. 그는 "우리는 홀로코스트와 관련이 없으므로 발언이 자유롭다"고도 덧붙였다. 그러나 숄츠 총리는 "이스라엘이 (테러에 맞서) 존재할 권리는 반박 불가한 것"이라며 물러서지 않았다.

인질 문제, 휴전 논의에서도 이견이 노출됐다. 하마스가 지난달 7일 이스라엘에서 납치한 인질과 관련, 에르도안 대통령은 "팔레스타인이 붙잡고 있는 인질이 몇이나 되나. 이스라엘엔 그 몇 배의 인질이 있다"고 말했다. '하마스에 억류된 인질 약 240명의 안전만 논해서는 안 되며, 이스라엘에 수감돼 있는 팔레스타인인 문제도 고려해야 공평한 처사'라는 주장이다. 또, 에르도안 대통령은 "즉각적인 인도주의적 휴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지만, 숄츠 총리는 "휴전을 한다고 해도 이스라엘의 자위권에 의문을 제기해선 안 된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고 맞섰다.

그동안 에르도안 대통령은 하마스를 테러 조직이 아닌 '해방 단체'로 칭하고, 이스라엘을 향해선 '가자지구에서 대량 학살을 하고 있다'고 비난해 왔다. 독일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과는 상당히 다른 입장이었다. 이 때문에 이번 정상회담 전부터 두 정상 간 의견 대립은 예상돼 왔다. 숄츠 총리는 "튀르키예와 매우 다른 관점을 갖고 있다는 것은 비밀이 아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대화가 중요한 이유"라며 만남 자체에 의의를 부여했다.

베를린= 신은별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