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동 험지 출마, 과한 기대다

입력
2023.11.22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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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게임이 시작됐다. 내년 총선에서 험지로 등 떠밀 희생양 찾기가 한창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가깝다는 이른바 김·제·동(기현, 장원, 권성)의 선택에 달렸다. “한두 명만 결단을 내리면 따라온다.” 지역구를 움켜쥔 손을 떼라며 인요한 혁신위는 양떼몰이를 자처했다.

험지는 말 그대로 험한 곳이다. 군에서는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함께 극복해야 할 장애물이다. 혼자 살겠다고 내빼는 꼼수는 용납되지 않는다. 공무원 사회에서는 격오지로 통한다. 다녀오면 인사고과에 유리한 기회의 땅이 될 수 있다.

유독 정치권에서는 기피대상이다. 어떻게든 엮이지 않으려 발버둥 친다. “국회의원이 왜 좋은 줄 알아요? 책임보다 권한이 많으니까.” 뻐기는 듯한 여당 의원의 말투다. 당선 가능성이 높은 곳에 밀치고 들어가도 시원찮은데 고난의 행군을 자청할 리 만무하다.

그래서 험지 출마는 간절하다. 앞서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부겸 전 총리는 지역주의 타파의 큰 뜻을 품었다. 긴 호흡으로 표밭을 다지는 청년 정치인도 부쩍 늘고 있다. 기회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경쟁력과 자신감이 없으면 시도할 수 없는 도전이다.

반면 여당 중진의원들은 울타리 안에 드러누웠다. 혁신위가 내건 '희생'은 과도한 기대다. 버스 수십 대로 지지자 수천 명을 실어 나르는 구태가 여전하다. 싫다는데 약을 들이밀고, 우유 먹이고, 그것도 안 되면 매를 들겠다며 보챌 일이 아니다. 이들을 수도권에 내리꽂는다고 표심이 꿈쩍이나 할까. 반향 없는 조리돌림일 뿐이다.

이러다 혁신위가 외통수로 몰릴 판이다. 국민이 바라는 건 먹고사는 문제다. 용퇴론이 모든 이슈를 집어삼켰다. 퇴로를 막고 밀어붙이는 게 능사는 아니다. 황무지를 뒤엎어 씨를 뿌리는 것만으로 족하다. 결실을 맺는 건 다음 선수의 몫이다.

대신 섬처럼 갇힌 영남당의 폐부를 찌른 건 성과다. 사람을 바꿔야 한다는 바람이 모처럼 불었다. 바람은 지난 총선에서 보수 정당에 뼈아픈 대목이다. 코로나19의 공습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정부의 방역대책을 꼬투리만 잡다가 수도권에서 사실상 궤멸했다.

한참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김포 서울 편입, 공매도 금지로 분위기를 띄웠다. 윤석열 정부라는 간판만 달고 휑하던 진열대를 이제야 채우고 있다. 논란이 가시지 않아 물건이 쓸 만한지 장담할 수 없지만 일단 시선은 끌었다. “주민들이 관심을 보이더라. 강서구 참패 때와는 분위기가 달라졌다.” 지방 출마를 앞둔 여권 인사의 전언이다.

혁신위의 호들갑이 불을 지폈다. 다행히 호객행위 수준은 넘어섰다. 뭔가 달라질 것이라는 입소문이 나면서 연일 티격태격 흥정이 벌어지고 있다. “선거는 카타르시스다. 매번 같은 후보가 나오면 질린다." 수도권 출마 예정자의 쓴소리다.

‘대통령을 사랑한다면 험지에 출마하라’는 건 교조주의로 비친다. 하지만 정부 성공을 바란다면서 기득권에 발목 잡혀 있다면 더 큰 문제다. 광활한 수도권을 무기력하게 바라보는 쪽은 총선에서 보나 마나다. 영남에서 아웅다웅하며 고립을 자초할 이유가 없다. 차라리 출마를 접는 게 현실적일지 모른다. 윤 대통령 임기는 아직 절반도 안 지났다.

더 이상 험지를 욕보이지 말라. 버티며 몸값을 높이려다 정치 혐오감만 부추길 뿐이다. 그들의 잣대로 보면 대한민국에는 험지에 사는 유권자가 훨씬 많다.

김광수 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