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저출생 문제가 뜨거운 화두가 된 지 상당한 시간이 지났다. 1982년 85만 명이었던 출생아 수는 2001년 기준으로 56만 명으로 감소했고 2022년에는 그 절반 이하 수준인 25만 명을 기록했다. 정부는 저출산 예산으로 2006년 2조1,000억 원을 시작으로 2012년 11조1,000억 원, 2016년 21조4,000억 원, 2022년 51조7,000억 원을 썼다고 한다. 그런데도 출생률은 예산 규모와는 반비례로 떨어지고 있다. 이렇게 예산을 많이 쓰고 있음에도 우리나라 가족지원예산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저조하고 대부분의 OECD 주요국 대비 유급 출산휴가를 사용한 사람도 적다.
저출생 문제에 대한 대책으로 싱글세(독신세) 도입 논란이 있었다. 어떤 정책적 정당성도 없는 편의주의적 발상으로 실소가 나올 뿐이다. 정부의 출산 독려도 구태의연하다. 결혼 안 하고 출산을 하지 않으면 애국심이 없는 사람으로 보는 듯하다. 저출생으로 인구가 줄어서, 국가의 존립이 위태로우니 애국심을 발휘하자고 한다. 애정, 결혼, 출산이 애국심 발휘의 문제인지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만약 그렇다면 애국심 발휘의 보상이 있어야 한다. 국가를 위하여 희생한 순국선열, 군인, 경찰 모두 그 희생에 상응한 보상을 받는다. 그러면 아이를 출산한 여성은 어떠한가? 현실은 보상은커녕 취업은 힘들어지고 자신의 커리어에 큰 손실을 입게 된다.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많은 돈이 드는데 아이를 낳으면 도리어 돈 벌기가 더 어려워지는 것이 현실이다. 집값, 물가가 천정부지로 오른 현 상황에서 결혼, 출산을 꺼리는 것을 애국심의 문제로 치부할 수는 없다.
아이는 여성이 낳지만 양육은 국가와 공동체 사회가 해야 한다는 인식 전환이 절실하다. 여전히 아이 양육은 부모의 책임이라는 기존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저출생 예산이 아이의 양육 비용에 쓰이는 것이 아니라 엉뚱한 곳에 쓰이고 있다. 자녀를 출산·양육하는 동안 맞닥뜨리는 일·육아 병행 및 경력단절 문제, 돌봄 공백 및 사교육 문제 등을 해소하기 위해 자녀 양육의 전 주기에 걸친 지원이 크게 확대돼야 한다. 영아기 육아휴직 제도 개선 및 활성화, 유아기 국공립 어린이집 및 유치원의 지속적 확충, 초등시기 돌봄 확대, 중·고등 시기 공교육 경쟁력 강화를 통한 사교육비 부담 완화 등이 이뤄져야 출생률 저하 문제의 해결책이 보일 것이다.
또한 갈수록 결혼율이 떨어지고 있는 상황 변화를 직시하고 아이를 낳기 위하여 결혼을 하여야만 하는 현재의 제도 개선도 필요해 보인다. 프랑스에서는 혼외 출생을 제도적으로 차별하지 않는 정책이 출생률 부양에 가장 큰 기여를 했다고 한다. 프랑스에선 출산 수당, 입양 수당, 양육 지원금 등 정부의 각종 혜택을 '부모 또는 가족'이 아닌 '아이'를 기준으로 준다. OECD 국가의 혼외 출생 비율과 합계 출산율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다는 분석도 있다.
저출생 문제를 해결할 골든타임이 지나가고 있다. 아이 양육과 교육 책임이 국가에 있다는 인식 전환과 함께 일 때문에 부모가 아이를 돌보지 못하는 환경을 바꿀 수 있는, 출산과 양육 부담을 더 많이 떠안은 여성이 '아이를 낳아도 삶이 망가지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근본적 제도 개혁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