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스포츠의 추락, J스포츠의 비상]
<5> 금메달 조바심 잠시 내려놔야
일본 체육계, 빠른 변화에 "상식을 의심하라"
한국은 '경험 의존 강압적' 코치 여전히 많아
영상 기술 등 발달 "동기부여 지도자가 대세"
'WBC 우승' 일본 감독, 대표적 대화형 지도자편집자주
한국 스포츠, 어떻게 기억하나요?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크게 도약한 우리 스포츠는 국민들에게 힘과 위로를 줬습니다. 하지만 저력의 K스포츠가 위기에 섰습니다. 프로 리그가 있는 종목조차 선수가 없어 존망을 걱정합니다. 반면 라이벌 일본은 호성적을 거두며 멀찍이 달아났습니다. 희비가 엇갈린 양국 스포츠 현실을 취재해 재도약의 해법을 찾아봤습니다.일본 스포츠 현장에 가면 '상식을 의심하라'는 얘기를 가장 많이 듣게 됩니다. 유소년부터 프로 레벨까지 모두가 그 얘기를 하죠.
일본 고교 야구 등 스포츠 전반을 30년간 취재해 온 오시마 히로시(62) 작가는 "스포츠 격변기라 아무리 경험 많은 지도자도 정답을 자신 있게 말하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며 이렇게 강조했다. 그는 일본 야구의 상징인 오타니 쇼헤이(29·LA 에인절스)를 예로 들었다. 오타니는 배트를 아래에서 위로 퍼올리는 '어퍼 스윙'을 한다. 만약 자신의 경험에만 의존하는 지도자가 그를 가르쳤다면 "기본이 안 됐다"며 격노했겠지만, 그를 가르친 지도자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결국 오타니는 그 스윙으로 미국 메이저리그 홈런왕까지 차지했다.
이처럼 재능이 아무리 뛰어난 선수라도 어떤 코치를 만나느냐에 따라 운동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 그만큼 코칭법이 중요하다. 운동 역학 등의 과학이나 의학을 바탕으로 한 지도법을 쉽게 접할 수 있는 시대인 만큼 지도자들도 이를 받아들이는 태도가 중요해졌다. 하지만 한국에선 여전히 경험에만 의존하거나 강압적 방식으로 선수를 위축시키는 코치가 적지 않다.
"권위적 코칭법에 질려 운동부 탈출…선수층 얇게 만든다"
강압적 지도는 가뜩이나 얇은 유소년 선수층을 더 얇게 만든다. 중·고교 운동부 생활을 한 이들 중에는 "화만 내는 코치 때문에 운동을 그만뒀다"고 토로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7년간 축구부 생활을 한 A(21)씨에게도 악몽 같은 기억이 있다. 그는 "감독이 게임에 지는 날이면 크게 화를 내며 합숙소의 TV도 보지 못하게 하고 스마트폰 사용도 금지했다"면서 "구타와 얼차려가 일상이라 축구를 그만뒀다"고 떠올렸다. 그는 "감독이 내 경기력을 구체적으로 평가하고 고칠 점을 지적해줬다면 당연히 받아들였을 것"이라고 했다.
특히 학생들이 운동을 막 접했을 때는 성적만 쫓기보다는 즐길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광주에서 초등학교 농구 클럽을 지도하는 한 코치는 "3, 4학년 친구들은 농구에 흥미를 느끼게 해줘야 하는데 엘리트 선수 출신 지도자 중에는 '야, 계속 안 뛸래?'라며 소리 지르고, 명령만 하니 일찍 질려 버리는 아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스스로 생각하는 플레이를 가로막는 지도법도 문제로 꼽힌다. 남녀 농구 스포츠클럽을 운영 중인 이윤희 경인고 교사는 "농구는 순간순간 선수 스스로 판단해 대처하는 게 중요하다. 코치가 매번 얘기해줄 수 없는 부분"이라면서 "국내 선수들은 어려서부터 이기기 위해 약속된 패턴 플레이를 익히는 데 골몰하다 보니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마주했을 때 당황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예컨대 4쿼터 막판 상대팀이 수비 전략을 갑자기 바꾸면 적응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실상 체벌에 가까운 방식으로 유소년 선수를 길들이는 지도자도 여전히 있다. 예컨대 축구부 코치가 훈련 명목으로 1m 거리에서 선수에게 강하게 슈팅을 하거나 배구부 코치가 바로 앞에서 선수 얼굴을 향해 강스파이크를 날리는 식이다.
"과학적 훈련법 확산해야"
일본도 권위적 지도자가 유소년 스포츠계에 많았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오시마 작가는 "지도자 역할이 달라지고 있다"고 했다. 영상 기술과 계측 장비의 발달 등으로 선수 스스로 자신의 장단점을 직접 파악할 수 있기에, 감독은 선수들이 동기부여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 게 중요해졌다. 그는 "올해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일본 대표팀을 우승으로 이끈 구리야마 히데키(62·하쿠오대 경영학부 교수) 감독이 대표적이다. 그는 논리력을 바탕으로 선수와 끝없이 대화하는 지도자다. 올해 고시엔 대회(일본 고교야구 전국대회)에서 게이오기주쿠고교를 우승으로 이끈 모리 바야시(50) 감독도 '엔조이 베이스볼'(즐기는 야구)을 모토로 내걸었다. 선수 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이를 달성하도록 돕는 '자율 야구'를 추구한 것이다. 오시마 작가는 "일본과 한국의 지도력 수준은 오십보백보지만, 그 오십 보의 차이가 승패를 가른다"고 했다.
한국 체육계에서도 '과학에 바탕을 둔 훈련과 지도법이 더 확산해야 한다'는 자성이 나온다. 강호석 스쿼시 국가대표 감독은 "한국 스포츠 지도자들은 선수 생활을 할 당시 과학적으로 훈련할 기회가 부족했다"면서 "선수 때 배우지 못한 코칭 방법을 접하도록 상급 단체에서 기회를 제공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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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주용 기자 juyong@hankookilbo.com
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도쿄= 유대근 기자 dynamic@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