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선 부른 글로벌 R&D 예산 확대, 기준·용도 분명히 해야

입력
2023.11.16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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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내년 전체 연구·개발(R&D) 예산을 줄이고 외국에 돈과 기술이 흘러 나갈 위험이 있는 글로벌 R&D 예산을 확대하기로 하면서 연구현장이 혼란에 빠졌다고 한다. ‘글로벌 R&D’의 기준조차 마련하지 않은 채, 대통령의 한마디에 정부가 모호한 지침을 전달하면서 연구자들을 뒤흔들고 있는 상황이 기가 막히다.

본보 보도에 따르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기초연구지원사업의 대다수 세부 명칭에 갑자기 ‘글로벌’을 붙였다. 이학 분야 선도연구센터(SRC) 사업은 ‘글로벌 SRC’로 바꾸고, 우수 중견 연구자 지원 사업을 ‘유형1’, ‘글로벌유형2’, ‘글로벌협력형’, ‘글로벌매칭형’으로 나누는 식이다.

이름을 보면, 한국 연구자보다 해외 연구자들에게 돈을 나눠 주겠다는 의지가 강하게 읽힌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 R&D 예산 재검토와 국제협력 확대를 지시한 후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연구자들은 해외 파트너를 찾아야 하는 건지, 어떻게 협력해야 글로벌 조건에 맞는 건지 한국연구재단에 숱하게 문의했다고 한다. 연구재단은 안내문을 냈지만 “다양한 형태로 추진할 예정”이라며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하지 않았다.

해외 능력 있는 학자들과의 공동연구는 성과를 높이는 긍정적인 요소가 분명히 있다. 이는 굳이 ‘글로벌’을 붙이지 않아도 연구현장에서 필요에 따라 실행하면 된다. 그런데 정부는 전체 R&D 예산은 10% 넘게 깎고, 글로벌 R&D 예산은 3.5배 늘리면서 오히려 국내 연구진 역차별 문제를 낳고 있다. 국내 연구진끼리도 충분히 가능한 연구인데 예산 지원을 받기 위해 불필요하게 해외 연구진을 찾아야 하는 상황까지 생길 수 있다. 소중한 국가 예산을 외국에 퍼주고, 기술 유출도 우려되며, 연구 성과에 대한 소유권 분쟁까지 생길 수 있는 문제다.

국제협력은 성과를 위한 것이지 그 자체가 목표가 될 수 없다. ‘글로벌’이라는 칸막이를 세워 국내 연구진보다 해외 연구진을 우대하는 듯한 정책을 보면, ‘대체 누구를 위한 정부인가’라는 한탄이 나올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