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흐름에 맞는 근로시간 개편

입력
2023.11.16 00:00
27면

정부는 11월 13일(월), '근로시간 관련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근로시간 개편안의 방향을 새롭게 제출했다. 새로 제시된 방향은 주52시간제 틀을 유지하되 일부 업종과 직종을 대상으로 연장근로총량관리제의 실시, 주 근로시간 상한의 설정과 노사정 대화를 통한 추진 등 세 가지이다.

지난 3월 정부 개편안이 발표된 이후 격렬한 반발과 논쟁에 휩싸인 제도는 연장근로총량관리제였다. 현행 제도에 따르면 법정근로시간 40시간과 연장근로시간 12시간을 합쳐 주 52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 연장근로총량관리제는 1주 12시간 대신 한 달에 연장근로 52시간을 초과할 수 없도록 한 제도이다. 이 제도에 따르면 허용가능한 최대 주 근로시간은 69시간인데, 근로시간 개편안은 주69시간제로 불리면서 노동자와 노조의 격렬한 반발에 부딪혀 더 이상 진전되지 못했다. 이에 따라 고용노동부는 노사와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여 수정안을 내겠다고 발표했고, 드디어 이날 수정안의 개략적인 방향이 발표된 것이다.

연장근로총량관리제는 근로시간 평균화 방식을 연장근로 관리에 적용한 제도이다. 근로시간 평균화 방식은 총근로시간이나 연장근로를 1주 단위로 관리하지 않고 월, 분기, 반기 또는 연 단위로 관리하되 1주 평균 몇 시간으로 규제하는 제도를 말한다. 유럽에서 '노사 간 합의'하에 근로시간을 '줄이고' 재조직하는 수단으로서 이 제도가 단체협약에 의해 본격적으로 채택된 것은 1980년대 후반 및 1990년대 초반이다. 유럽에서 이 제도는 근로시간 단축 또는 연속휴식 11시간제·야간근로시간의 한도 설정 등과 교환하는 조건으로 제도화되었다.

특히 1993년 발표된 유럽연합의 근로시간 지침은 이 제도의 확산에 기여했다. 많은 나라들은 이때 근로시간 평균화제도에 관한 입법을 했다. 그 때문에 유럽의 다수 국가들은 4개월 평균 주 48시간 제도를 갖고 있다.

우리나라 근로시간제도의 형성과정에서도 근로시간 단축과정에서 유연성 제도와의 교환이 시도되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유럽과 달리 근로시간 단축은 근로시간 평균화제도가 아니라 탄력적 근로시간 제도와 교환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그 결과 1주 단위의 근로시간 규제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근로시간 개편안을 둘러싼 이러한 혼돈과 갈등은 한국의 근로시간 제도가 역사적으로 형성된 특성을 반영한다. 첫째, 사용자들은 오랫동안 주68시간제라는 장시간근로에 의존해 왔으므로 근로시간 평균화제도의 필요성을 그다지 느끼지 못했다. 둘째, 유럽에서는 장시간 근로가 해소된 상태에서 근로시간 평균화제도의 도입을 둘러싼 유연성 타협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많은 노동자들이 불과 수년 전까지 장시간근로에 시달린 경험을 가졌으며, 여전히 포괄임금제 오남용·눈치 보며 연차 쓰는 문화 등이 문제가 되는 상태에서 근로시간 유연성 타협이 시도되었다.

그 때문에 근로시간 평균화제도를 통해서 상품과 서비스의 수요 변동에 대응해야 할 기업의 필요를 충족시키고자 하는 정부와 이제 막 만성적인 연장근로에서 벗어나 다시 장시간근로를 하게 될까 두려운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이 부딪힌 것이다. 모처럼 조성된 노사정 대화를 통해서 워라밸을 가능하게 하는 예측가능한 근로시간 조직과 근로시간 평균화제도 사이의 타협이 마무리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정승국 고려대 노동대학원 객원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