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트윈스의 구단주인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13일 밤 한국시리즈 우승 소감을 말하자 서울 잠실구장을 가득 채운 팬들은 '구광모'를 외쳤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진짜 반듯한 엘리트 느낌이 난다', '원래 저렇게 말을 조리 있게 잘했나' 등 호평이 이어졌다.
1978년생인 구 회장은 또래의 다른 대기업 오너가 3·4세들과 달리 자신의 대외 활동을 알리는 데 적극적이지 않았다. 구 회장이 해외 주요 기업인들과 만남을 가지거나 사업장 등 현장을 방문해도 그룹에서는 홍보 자료를 내지 않거나 다음날 알렸다. 공개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공식 계정도 없다. 언론인들과도 공개된 장소에서 마주한 적 없고 그의 목소리를 들어 본 언론인이 거의 없을 정도다. 주요 계열사의 최고경영자(CEO)에게 자율성을 주고, 본인은 그룹의 미래 먹거리 발굴에 집중하겠다는 경영 방침을 실천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다 TV 생중계로 대중이 지켜보는 한국 최고의 스포츠 이벤트 한국시리즈를 통해 구 회장의 소탈하면서 활기찬 이미지가 널리 알려지면서 명실상부 LG그룹의 총수 이미지를 다졌다는 평가다.
특히 '아버지' 고(故) 구본무 선대회장의 유산인 '롤렉스 시계'가 아들 구광모 회장에게 돌아갈 것으로 보이면서 그 의미는 더욱 커진다. 구 선대회장이 한국시리즈 MVP에게 선물하기 위해 마련한 시계를 두고 이번 한국시리즈 MVP인 오지환 선수는 "구본무 회장님의 유품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저는 구광모 회장님께 드리겠다"고 계획을 밝혔다.
구 회장이 취임한 5년 동안 LG에는 눈에 띄는 변화가 있었다. 구 선대회장의 별세로 2018년 6월 갑작스레 30대의 나이로 지주회사 ㈜LG 대표 자리에 오른 그는 '고객 가치'라는 키워드를 강조하며 그룹을 이끌어왔다. 그사이 LG그룹의 매출은 2019년 138조1,508억 원에서 매년 성장해 지난해 190조2,925억 원으로 커졌다. 영업이익 또한 경기 침체 속에서도 4조6,341억 원에서 8조2,202억 원으로 77% 크게 올랐다.
여기에 국내에서 가장 많은 팬을 보유한 프로스포츠팀 LG트윈스의 구단주가 된 지 6년 만에 '우승 구단주'가 되는 행운이 찾아오면서 대중적 인지도까지 얻게 됐다.
특히 구 회장은 다른 총수들과 달리 수평적 리더십을 강조해 왔다. 평소 '회장'이라는 직위가 아닌 '대표'라는 직책으로 불러 달라고 요청한 것도 대표적 사례다. 그러면서도 과감한 사업 재편도 단행했다. 2019년 LG디스플레이의 조명용 유기발광다이오드(OLED)와 LG유플러스의 전자결제 사업을 시작으로 2020년 LG화학의 편광판 사업, 2021년 LG전자의 스마트폰 사업 등을 차례로 철수하며 사업 포트폴리오를 정비했다. 또 향후 10년 이후를 준비하기 위해 미래 사업으로 'ABC(인공지능(AI)·바이오(Bio)·클린테크(Cleantech)'를 정하고 조직 체계를 가다듬고 인재를 확보하는 데 힘을 쏟았다.
이런 모습을 두고 재계에서는 그가 구 선대회장의 경영 철학을 잘 계승했다는 평가를 내린다. 구 선대회장 역시 계열 분리를 통해 금융, 전선, 정유, 건설, 유통 등의 사업 분야를 정리하고 전자, 화학, 통신 서비스 영역을 중심으로 하는 사업 포트폴리오를 짰다. 이를 통해 LG는 OLED, 이차전지 등 분야에서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거듭났다.
재계 관계자는 "불황 속에서도 LG는 다른 그룹들과 달리 실적도 좋고 미래 포트폴리오도 잘 갖췄다"며 "구 회장이 묵묵히 미래를 준비하는 상황에서 LG트윈스가 우승을 하면서 대중에게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기폭제가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