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혐오 범죄가 도를 넘었다는 생각이 나만의 것은 아닐 것이다. 지난해 부산에서 생면부지 여성을 성폭행하려 돌려차기로 기절시킨 남성은 2심에서야 강간살인미수 혐의가 인정돼 징역 20년형을 받았다. 8월 서울 신림동에서 여성을 성폭행하려 둔기로 때리고 사망케 한 최윤종은 돌려차기 사건을 모방했다고 밝혔다. 7월 경기 의왕시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여성을 성폭행하려 마구 폭행한 20대 남성은 재판에서 ‘군대 안 가는 여성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며 심신 미약을 주장했다. 이를 극소수 예외적 범죄라고 치부한다면 ‘머리가 짧은 것을 보니 페미니스트’라며 편의점 점원을 폭행한 사건은 어떤가. 만취했거나 정신질환을 앓는다는 이유로 여성 혐오 범죄를 부정할 수는 없다. 그들조차 건장한 남성이 아니라 쇼트커트 여성을 공격의 대상으로 삼을 만큼 여성 혐오 인식이 박혀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최근 외신에도 보도될 만큼 심각한 한국의 퇴행에는 분명한 원인이 있다. 바로 정치다. 이준석씨가 2021년 안티 페미니즘을 기치로 내걸고 이대남 표를 결집시켜 국민의힘 대표가 되면서 한국 정치는 여성 혐오 정치라는 새로운 나쁜 경지를 열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나 떠들던 ‘손가락 표식=남성 차별’ 주장에 정치인이 힘을 실어주고,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말이 대통령 입에서 나왔다. 성폭력 범죄와 페미니스트 공격이 이런 정치와 무관하지 않다. 여성가족부는 내년도 여성폭력 방지·피해자 지원 예산을 142억 원이나 줄였고 고용노동부는 민간이 운영하는 고용평등상담실을 폐지한다며 예산을 절반 이상 삭감했다. 여성의 삶은 더 위태롭고 더 힘들어지게 됐다.
그랬던 이 전 대표가 윤석열 대통령과 갈라서고 신당을 만든다는데, 대체 이 신당이 무얼 하겠다는 것인지는 묻지 않고 누구와 만나 얼마나 세를 규합할지만 따지는 정치가 황당하다. 여야 누구에게 더 치명적인가 분석에만 급급한 언론 또한 문제다. 혐오 행보에 시치미를 뚝 떼고 ‘이준석 신당에도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이상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러려고 무수한 악플을 감수하며 민주당 내에서 쓴소리를 해왔던 건가. 제3지대 빅텐트를 추진하는 금태섭 새로운선택 창당준비위원장은 이 전 대표의 안티 페미니즘을 확인하고서 “계속 만나겠다”고 말하는 건가. 류호정 정의당 의원은 "(이 전 대표와) 같이하게 되면 청년 세대의 젠더 갈등 같은 문제 해결을 위해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 했는데 지금까지 터놓고 말하지 못해 ‘갈등’이 심화했다는 건가.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이런 입장차를 “대의를 위해” 극복할 수 있는 “사소한 문제”라고 했다. 그럴 줄 알았지만 틀렸다. 젠더 문제 자체만으로도 사소하지 않지만, 이준석식 혐오 정치가 소수자·약자 혐오로 확대돼 온 것은 가볍지 않다. 이 전 대표는 시민의 권리를 요구하는 장애인 시위를 ‘비문명’으로 낙인찍고, 4대째 한국에서 살아온 귀화인 인요한 여당 혁신위원장에게 영어를 써서 배제와 차별의 메시지를 드러낸다. 오직 선거에서 이기는 것을 목표로 약자 공격을 서슴지 않고 공동체를 깨뜨리는 이준석 정치 스타일에 동의하는가. 그와 함께하겠다는 정치인은 이 중요한 질문에 먼저 답해야 한다.
제3지대를 타진하는 정치인들은 ‘양당 정치를 벗어난 새로운 정치’를 내세운다. 그러나 양당을 뺀 정치 지형에 하나의 지대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더 진보적이거나 더 보수적인 지대도, 대중에 영합하는 혐오의 지대도 존재한다. 이들이 하나의 텐트 아래에 모이는 것을 외연 확장이라 부른다면 오판이다. 정체불명의 제3지대를 꿰뚫어 볼 유권자들이 존재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