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복용을 처벌하는 대신 자발적 중독 치료를 유도할 수는 없을까. 3년 전 이 같은 발상을 실행에 옮긴 미국의 실험이 실패로 돌아갔다. 모든 종류의 마약 소지와 복용을 '비범죄화'한 미 오리건주(州)에서 마약 과다 복용 건수가 2배가량 늘어났다. 마약 중독을 개인 의지에 맡겨 해결하는 것이 극히 어렵다는 결론이다.
11일(현지시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2020년 11월 오리건주는 주민투표 결과 58% 찬성률로 마약을 비범죄화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헤로인, 코카인, 메스암페타민(필로폰) 등 마약을 갖고 있거나 복용하다가 경찰에 적발돼도 형사처벌받지 않았다. 경찰은 마약 소지자를 체포하는 대신 재활 과정을 안내하는 문서를 손에 쥐어 줬다. 마약 복용자는 건강 문진표를 작성해 주정부에 제출하면 끝이었다. 이를 어기면 100달러의 과태료를 내게 돼 있었지만, 안 내는 사람이 많았다. 마약 소지·복용자의 수감 비용을 마약 중독 치료에 쓰는 게 더 생산적이라는 게 법안 취지였다.
당시 법안을 지지했던 심리치료사 톰 에커트는 2020년 WSJ에 “(처벌이 아닌) 새로운 치료법이 필요하다"고 했다. 로버트 미코스 미국 밴더빌트대 교수도 “다른 주에서도 오리건주처럼 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오리건주는 1973년 미국 최초로 대마를 합법화하며 1990년대 캘리포니아·알래스카·메인·워싱턴주 등이 뒤따르는 계기를 만들었다.
그러나 꿈은 이뤄지지 않았다. 마약 복용자들은 치료 권고를 받고도 진료소나 상담소로 가지 않았다. 오리건주는 마약에 취해 거리에 널브러져 있는 시민들로 인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지난 3년 간 재활 지원 안내문 약 6,000건이 배포됐지만, 실제 치료로 연결된 건 92건에 불과했다. 주 경찰은 안내문 배포를 사실상 포기했다.
오리건주 유진시 경찰 당국에 신고된 약물 과다 복용 건수도 지난해 823건에 달했다. 법 시행 전인 2020년의 438건보다 1.87배 늘었다. 주 전체의 약물 과다 복용 신고도 지난해 5월부터 1년간 약 1,500건이 접수됐다. 유진에서 상점을 운영하는 매트 지그문트는 WSJ에 “매일 아침 가게 앞에 버려진 주삿바늘과 알루미늄 포일, 대변 등을 치운다”고 말했다.
키스 험프레이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는 “오리건주는 마약을 비범죄화하면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치료를 원하리라 가정했지만, 중독은 그런 것이 아니다”고 평가했다. 법안을 추진한 민주당도 실패를 인정하고 마약 과다 복용자를 72시간 동안 구금하도록 법을 개정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