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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남자(마이클 패스벤더)는 살인청부업자다. 이력이 꽤 된 듯 일이 능숙해 보인다. 그는 프랑스 파리에서 한 타깃을 며칠 동안 끈덕지게 기다린다. 죽여야 될 이유를 그는 모른다. 알 필요가 없다. 그저 돈 받고 ‘업무’를 처리하면 된다. 하지만 노련한 그도 첫 실수를 한다. 잡히지 않게 현장을 빠져나오는 게 급선무다. 도미니카 은신처에 와 보니 집이 난장판이 돼 있다. 누군가 그를 노리는 게 분명하다. 타깃의 보복 행위일까. 증거인멸을 위한 의뢰인의 후속 조치일까.
남자는 성실하다. 뭐든 계획적이다. 프랑스를 빠져나가는 과정부터 용의주도하다. 여권과 신분증은 매번 바뀐다. 공항에서 어떤 인물과 두세 번 마주친 것만으로도 그는 경계심을 품는다. 남자는 말수는 적고 행동이 언제나 먼저다. 홀쭉한 몸에는 고된 단련의 흔적이 뚜렷하다. 햄버거를 먹을 때 빵은 버린다.
남자를 노리는 이들은 누구일까. 남자의 은신처를 알아낸 것부터가 보통이 아니다. 남자는 후환의 불씨를 찾아내 없애고 싶다.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이들이 어떻게 은신처를 찾아냈는지 역추적을 한다. 그 경로의 끝에는 자신의 목숨을 위협하는 궁극적인 누군가가 있다. 남자는 그를 찾으려 한다.
남자의 모토는 ‘계획을 지켜라(Stick to the Plan)’이다. 마음에 미세한 진동이 올 때마다 이 말을 몇 번이고 되뇐다. 남자가 의지대로 저 철칙을 지킬 건지 아니면 어떤 이유로 철칙이 무너져 예상치 못했던 비극적 상황을 맞을지 사이에서 스릴과 서스펜스가 형성된다. 남자를 괴롭히는 건 외부의 위협이 아니라 자신 내부에 똬리를 튼 충동이다.
이야기는 간결하다. 단순하다고도 할 수 있다. 남자가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위협 요소를 제거하는 과정을 영화는 최대한 감정을 배제하고 전하려 한다. 감독이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21세기 자본주의 사회의 비애가 스크린을 감싼다.
서사보다 스타일을 앞세운 영화다. 감독은 데이비드 핀처다. 당대 할리우드에서 스타일의 최전선에 있는 인물이다. 핀처 감독은 자신의 명성을 재확인하려는 듯 수려한 화면과 리듬감 있는 편집, 심장을 두드리는 음향으로 보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으려 한다. 광고 감독으로 시작해 서른 살에 ‘에이리언3’(1992)로 영화감독이 된 핀처는 30년 넘게 습득한 세공술을 스크린에 아로새긴다. 장인의 면모를 새삼 실감하게 된다.
이야기는 빈약하고 형식은 풍성한 대개의 영화가 지닌 한계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런 영화가 지닌 풍미를 마음껏 발산하는 영화다. 뇌를 자극하기보다 시신경과 고막이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