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 ‘자살’, ‘경매기록’ 회자되는 '천재' 화가

입력
2023.11.09 04:30
20면
<33> 매튜 웡은 어디로 갔을까?

편집자주

아무리 유명한 예술작품도 나에게 의미가 없다면 텅 빈 감상에 그칩니다. 한 장의 그림이 한 사람의 삶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맛있게 그림보기는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그림 이야기입니다. 미술교육자 송주영이 안내합니다.

“이 그림 알아? 나 이거 보는 순간 심장 멎는 줄. 이런 경험 처음이야.” 얼마 전 평소 미술에 별 관심이 없던 친구가 한 작품 이미지를 보여주면서 말했다. 처음 보는 그림이었다. 한참을 멍하니 보기만 했다. ‘시간은 어디로 갔을까’란 작품 제목처럼 내 시간마저 그림의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간 듯했다. 자잘하게 바쁘고 어수선한 일상에 매달려 뛰느라 한동안 잊고 살았던 느낌이었다. ‘그림 보는 기쁨, 감상의 즐거움이란, 그래. 이런 것이었지’, ‘이 그림에 대한 글을 써야지’ 하며 머릿속으로 서둘러 문장을 짓고 있었다. 그때 친구가 했던 말, “그런데 이거 그린 사람, 실제로 시간 속으로 사라졌다. 몇 년 전에 스스로 생을 마감했대.” ‘아, 이런!’

경매시장과 초현대미술

친구가 이 그림을 본 곳은 미국 보스턴미술관(MFA)이다. MFA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시카고 미술관과 함께 미국 3대 미술관으로 불린다. 여기서 지금 특별한 전시가 열리고 있다. 중국계 캐나다 화가 매튜 웡(Matthew Wong·1984~2019)의 대형 회고전이 내년 2월까지 열린다. 몇 년 전 언뜻 봤던 이름이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전 세계가 얼어붙었던 2020년, 그의 이름이 자주 문화 뉴스에 등장했다. 당시에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웡에 대한 소식은 전부 초현대미술(Ultra-contemporary art) 뉴스였기 때문이다. 초현대미술이란 말은 세계 최대 미술시장 플랫폼, 아트넷(Artnet)이 2019년 처음 사용한 용어다. 경매회사들이 사용하는 상품 구분 명칭이다. 미학 담론이나 미술사 양식과는 상관없이 단순히 창작자들의 연령이 기준이다.

경매시장에서 현대미술은 1945년 이후 출생한 예술가의 작품이며, 초현대미술은 1975년 이후에 출생한 예술가의 작품이라는 뜻이다. 작품이 처음 거래되는 갤러리(화랑)를 1차 미술시장, 그리고 소더비, 크리스티, 서울옥션, 케이옥션 등과 같은 국내외 경매사를 2차 미술시장이라 부른다. 2차 미술시장에서 초현대미술이라는 말이 사용된 지 이제 4년 정도다. 그러나 지난 4년 동안 미술시장은 놀랍게 변했다.

올해 초 프랑스의 미술시장 조사기관인 아트프라이스(Artprice)가 발표한 ‘2022년 미술시장 보고서’의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다. 2021년 전 세계 경매시장에서 거래된 고미술품, 골동품 및 예술품 등 전체 규모 중에서 약 17.6%가 1945년 이후 출생 예술가의 작품이었고, 그중 약 38%가 미국 뉴욕에서 창출됐다. 현대미술 중에서 초현대미술은 15.5%였고, 한 해 2,670명의 작품 총 9,640점이 낙찰됐다. 비중이 작다고 느낄 수 있겠지만, 젊은 작가의 작품이 고가에 낙찰되는 건 새로운 양상이다.

1차 미술시장에서 조금씩 가격이 오르다가 중견작가 반열에 오르고 나서야 경매에 나올 수 있었던 과거에 비하면 최근 4년간의 미술시장은 확연히 다르다. 1차 거래의 영향력이 줄면서 곧바로 2차 시장으로 작가가 유입되기 때문이다. 미술시장 보고서에 기록된 40세 미만 상위 10인 작가 중 여성이 8명이다. 그러나 압도적 1위가 있었으니 바로 웡이다. 그의 작품 12점의 경매 총액은 2,132만6,103달러(약 270억 원)이었다. 미술 비전공자로 겨우 6년의 그림 경력과 3번의 개인전이 전부였던 웡, 그는 대체 누구인가?

매튜 웡 이야기

웡은 1984년 캐나다 온타리오주 토론토에서 태어났다. 이후 홍콩에서 살다가 자폐 스펙트럼으로 인한 틱 장애 및 투렛 증후군 치료를 이유로 15세 무렵 다시 토론토로 왔다. 그는 한 번 본 것을 사진 찍듯 정확히 기억한다는 일명 '포토그래픽 메모리' 소유자였지만, 감정조절과 대인관계에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무사히 미국 미시간대에서 인류학 전공으로 학업을 마쳤고 홍콩시티대에서 사진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간간이 찾아오는 자살충동이 있었지만 엄청난 독서량의 학구적인 청년으로 무난히 성장했다.

웡은 2013년 29세에 처음 붓을 들었다. 2022년 5월 미국 시사주간지 ‘더 뉴요커’에 라피 캐차도리언이 쓴 ‘매튜 웡의 빛과 그림자 인생’에 따르면, 그는 오랫동안 교제했던 연인과 헤어진 후 “이제 내게 남겨진 일은 그림을 그리거나 죽는 것뿐”이라며 강박적으로 그림에 몰입했다. 홍콩의 도서관에서 미술 관련 서적을 탐독한 후, 집에 돌아와 종일 그림을 그렸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접속했다. 당시 그는 ‘페이스북 화가’로 통했다. 미국 미술전문매체 ‘아트넷 뉴스’ 칼럼니스트 케니 샥터는 “웡은 페이스북에서 초인적인 속도로 정보를 빨아들였고, 이를 곧바로 그림과 시로 표현했다”고 평가했다. 웡은 페이스북을 통해 제리 살츠, 에릭 서핀 등 유명 미술평론가, 그리고 여러 화가들과 활발히 소통했다. 대면관계에 어려움이 있는 그에게 페이스북은 최고의 학교였다. 서핀은 “웡의 페이스북 페이지는 예술가, 딜러, 큐레이터, 비평가들이 모여 그의 게시물에 대해 활발한 토론을 벌이는 가상 살롱이었다"고 회고했다. 자폐 스펙트럼과 함께 뛰어난 재능을 가진 이 중국계 청년의 지독한 열정은 충분히 이야깃거리가 됐다. 현대미술은 내러티브, 즉 사연을 원하니까.

웡은 세상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은둔자임과 동시에 미술계의 핵심으로 들어가고 싶은 투사였다. 자신의 그림을 열정적으로 알렸다. 롤러코스터처럼 조울증이 반복되면서 그의 어머니는 캐나다 앨버타주 에드먼턴으로 이주를 결정했다. 캐나다인으로서 의료혜택을 받으며 치료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웡은 강박적으로 그림을 그렸고, 열정적으로 페이스북 소통을 이어갔고, 마침내 2018년 미국 뉴욕 카르마 갤러리에서 첫 번째 개인전을 열었다. 정규 미술교육을 받은 적 없는 백수이자 ‘헤비 페부커(facebooker·페이스북 이용자)’가 붓을 잡은 지 5년 만에 뉴욕 유명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하다니, 이 자체로 또 하나의 이야기가 만들어진 셈이다. 다만 당시 갤러리는 웡이 제시했던 작품가가 너무 높다며 갤러리는 좀 더 낮은 가격에서 거래를 진행했다. 아마 내가 갤러리스트였다 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카르마 갤러리에서 열린 첫 개인전은 대성공이었다. 유명 미술평론가들은 그의 그림에 감탄했고, 언론도 앞다퉈 그를 소개했다. 당연히 작품가는 상승했고 갤러리는 곧바로 두 번째 개인전을 제안했다. 웡은 페이스북 활동을 줄이고 새로운 개인전 준비에 집중했다. 웡과 그의 어머니는 자주 뉴욕을 방문했고 그때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웡의 옆에는 항상 어머니 모니타 웡이 있었다. 그는 “사람들이 웡의 그림에 감탄하면서도 동시에 경멸적으로 보는 느낌이 있었다”고 회상했다.

개인전을 한 달 앞두고 마지막으로 뉴욕을 방문하고 다시 에드먼턴으로 가는 공항에서 웡은 갑자기 인스타그램에 발작적으로 사진과 글을 올렸다. 엄청난 조증 상태였다. 걱정과 우려를 보내는 온라인 친구들에게 그는 설명했다. “나는 평생 이런 속도, 리듬, 흐름으로 살았어요. 이것이 내가 그림을 그리는 방식임을 알리고 싶었어요.” 그에게는 일관된 소재가 있었다. 날아가는 새, 날개, 그리고 바람이다. 미술계 관계자들이 웡의 새 개인전을 기다리며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던 10월 2일, 그는 건물 옥상에 섰다. 그리고 새처럼 바람처럼 하늘로 날아갔다.

죽어야 사는 예술가

프랑스 철학자, 롤랑 바르트는 ‘저자의 죽음’(1968)이란 파격적 제목의 에세이를 썼다. 바르트는 “저자의 죽음의 대가로 우리가 얻는 것은 독자의 탄생이어야 한다”며 창작자보다 감상자가 중요하다고 했다. 미셸 푸코와 자크 데리다 또한 예술품은 창작자의 천재성 때문이 아니라 사회·문화적 맥락 속에서 태어난다고 봤다. ‘죽어야 사는 예술가’에 대한 저들의 진단은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저들은 21세기 예술계를 흔드는 자본의 메커니즘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을 거다. 죽을 것만 같아서, 죽지 않으려고 매일 창작에 매달렸던 웡의 그림을 헐값에 샀던 누군가가 그의 사후 바로 그림을 경매사로 넘겨서 1년 만에 6,700%의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건 상상조차 못했을 거다.

웡을 소개하는 모든 글, 영상, 보도에서 빠지지 않는 키워드 네 가지가 있다. ‘자폐’, ‘천재’, ‘자살’, ‘경매기록’이다. 함께 거론되는 예술가 둘이 있다. 요절한 독학형 천재화가, 경매가 신기록이라는 공통점이 있는 고흐(1853~1890)와 바스키아(1960~1988)다. 문자 그대로 ‘죽어야 사는 예술가’들이다. 그림은 그들이 그렸지만 정작 돈을 번 사람들은 극소수의 부자들이다. ‘예술작품은 문화·사회적 결과물’이라는 학자들의 말에 밑줄 그어가며 공부했던 우리들은 ‘죽어야 사는 예술가’의 작품 가격부터 찾아본다. 전시회를 찾아다니며 인스타그램에 인증 샷을 올리고, 유명 화가가 위독하다는 것이 알려지면 갑자기 작품 거래량이 증가한다. 그리고 이 모든 현상은 예술시장 활성화에 이익이 된다.

웡의 그림 ‘시간은 어디로 갔을까’를 보면서 오랜만에 느꼈던 감상의 즐거움을 반문했다. 작가의 이름도, 사연도 모른 채 “와, 그림 너무 좋다”고 외쳤던 나의 평가는 정말 순수했을까? 세계적인 미술관에 걸렸다는 선입견이 작동된 것은 아니었을까? 작품 제목이 ‘무제’라도 감동했을까? 옆집 아이의 낙서였대도 감탄했을까? 당연히 전시 장소, 작품에 얽힌 이야기, 제목, 작품 가격 등 정보의 영향을 받는다. 그 어떤 그림 감상도 진공상태에서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예술작품으로서의 그림은 삼색 신호등과 같은 사인 물이 아니고, 덧셈과 뺄셈을 알리는 부호도 아니다.

좋은 작품에 대한 호불호는 개인의 몫이지만, 오랜 시간 훈련된 안목을 가진 사람들의 공통 평가는 그 집단의 문화·사회적 역량이다. 웡의 작품을 둘러싼 여러 논란은 앞으로도 있겠지만,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웡의 그림을 ‘맛있게’ 보게 될 것이다. 그의 그림에 감탄했던 나의 친구, 오래간만에 그림 감상의 즐거움을 느꼈던 나, 진심으로 웡의 그림 앞에 무릎을 꿇었던 미술평론가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저릿하게 아프다. 웡의 묘비에는 그가 2013년 쓴 시 ‘6월(June)’이 새겨져 있다. 모니타는 아들이 헤어진 연인을 그리며 쓴 시라는 걸 알면서도, “엄마 생일이 6월인 걸 아들이 말해 주는 것 같아서” 이를 선택했다고 했다. 그 말에 나도 함께 울었다. '이 모퉁이를 돌면 이제 만날 수 있다'는 마지막 시구를 묘비를 닦으며 읽고 있을 어머니에게 '요절한 화가의 불꽃같은 예술혼'은 없다.



미술교육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