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느끼는 그 '감정'은 사실 은밀하게 사회의 불평등 구조를 지속시킨다 [책과 세상]

입력
2023.11.11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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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정의 문화정치'

편집자주

책, 소설, 영화, 드라마, 가요, 연극, 미술 등 문화 속에서 드러나는 젠더 이슈를 문화부 기자들이 다양한 각도에서 살펴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매해 서울 도심에서 열리는 퀴어퍼레이드 현장에서 기독교인들이 이런 팻말을 들고 서 있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이 강력한 사랑이라는 감정은 단숨에 광장에 모인 성소수자들을 '타자화'해버린다. 혐오 단체를 '사랑의 단체'로, 차별 그리고 낙인을 '사랑의 행위'로 바꿔버리고, 사랑을 국가와 타자를 보호하는 방식으로 의미화한다.

고통, 증오, 공포, 역겨움, 수치심, 사랑… 어떤 감정은 강력하다. 여러 사람을 정서적으로 묶어주며 정치적, 사회적으로 결집시킨다. 그리고 '타자'를 만들어낸다. '우리'에게 위협과 공포, 불안, 증오를 불러일으키는 낯설고 위험한 존재. 선량하고 순수한 '우리'는 타자에 맞서 방어하거나 그들을 계도하여 사회 규범을 유지해나간다. 2018년 예멘 난민과 마주한 한국 사회처럼.

페미니스트 연구자 사라 아메드의 책 '감정의 문화정치'는 감정을 개인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을 생성하는 사회문화적 실천이자 정치적인 효과로 본다. 시민권을 규율하는 문화정치의 핵심 기제가 되어버린 감정은 권력구조와 폭력을 재생산하는 도구가 된다. 인종차별, 계급차별, 이성애중심주의 같은 규범에 얼기설기 엮인 감정들을 보라. 저자는 감정을 개인적이고 심리적인 것으로 다루거나 감정이 강화되는 지점을 무시한 채 사회구조를 설명하는 방식을 비판한다. "사회구조는 강화된 감정 없이 존재 양식으로 물화될 수 없다."

책은 인문학과 사회연구, 예술비평 등 여러 분야에서 두루 쓰이는 '정동(情動·affect)' 개념을 쉽고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길잡이 역할을 한다. 2004년 영문 초판 출간된 책에는 그간 '감정 연구와 정동 이론의 필독서' '페미니즘 및 비판 이론의 확장에 기여한 탁월한 저서' 등의 수식어가 뒤따랐던 만큼, 이 책은 20년 가까이 많은 독자가 번역 출간을 기다려 왔다.




이혜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