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공격으로 시작된 전쟁의 포화는 개전 한 달을 맞은 6일(현지시간)까지도 잦아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평화로운 토요일이었던 지난달 7일 아침, 하마스의 손에 무참히 살해된 민간인 1,300명(군인 포함 시 현재까지 1,400명 사망 추정)의 복수를 위해 나선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근거지 가자지구에 밤낮없이 공습을 퍼부었다. 그 결과, 최소 1만22명(6일 기준)의 팔레스타인인이 죽음으로 내몰렸다.
‘하마스 궤멸’을 목표로 세운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의 심장부 가자시티를 완전 포위한 채 본격적인 시가전 개시를 앞두고 있다. 하마스 역시 물러설 태세가 아니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개입에도 전황이 날로 격화하는 이유다.
“죽은 딸을 위해서라도 하마스에 끝까지 복수해 달라”고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에게 당부한 이스라엘인 아버지. 싸늘히 식은 아들의 시신을 부여잡고 “네타냐후에게 기필코 승리하겠다”고 외친 팔레스타인 아버지. 자녀를 잃은 이들의 원한이 ‘피의 보복’만 반복되는 이 전쟁의 끝에서 과연 풀릴 수 있을지에 대해선 그 누구도 답할 수 없다.
이스라엘의 전면 봉쇄로 ‘지붕 없는 감옥’이었던 가자지구는 이제 ‘무덤’이 됐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이날 가자지구 중심부의 알마가지·부레이지의 난민촌 2곳을 이스라엘이 공격하면서 최소 47명과 21명이 각각 숨졌다고 보도했다. 이스라엘방위군(IDF)은 하마스가 거점으로 활용하고 있다며 난민촌 주택뿐 아니라 학교, 교회, 병원을 폭격했다. 심지어 구급차도 공습 대상이 됐다. 이는 팔레스타인 측 사망자 절반에 가까운 4,000명이 어린이라는 참혹한 ‘결과’를 낳았다.
이스라엘 매체 하레츠는 6일 “앞으로 48시간 안에 이스라엘군 보병부대가 가자시티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시가전 돌입을 점쳤다. 가자지구 주민 230만 명의 약 70%인 150만 명이 집을 떠났지만, 약 40만 명은 지금도 북부에 머무르고 있다. 시가전이 본격화하면 민간인 희생 급증은 불가피하다. 공습만이 가자지구를 생지옥으로 만든 것도 아니다. 이스라엘의 봉쇄가 계속되면서 식량과 의약품, 전력에 이어 식수마저 바닥을 드러냈다. 가자지구 전역의 통신망도 또다시 끊겼다.
국제사회의 휴전 압박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지난달 유엔총회의 휴전 협정 결의안 가결에 이어 6일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과 유니세프, 세계식량계획(WFP) 등 18개 인도주의 단체의 수장도 공동성명을 내고 “전쟁 30일이 지났다. 이 정도면 됐다”며 즉각적인 휴전을 촉구했다.
문제는 이렇다 할 출구 전략이 없다는 점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조차 전쟁의 ‘결말’을 두고 이견을 보이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했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휴전보다 수위를 낮춘 ‘일시적 교전 중단’을 네타냐후 총리에게 제안했다가 단칼에 거절당했다. 이스라엘도 확전을 바라진 않지만 하마스 궤멸 이전엔 물러서기 힘든 상황이라는 게 WSJ의 해석이다. 영국 BBC방송은 “미국은 존재하지 않는 ‘중간 지점’을 찾으려 노력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개전 직후부터 우려되던 ‘제5차 중동 전쟁’의 불씨도 살아 있다. 이스라엘과 레바논 무장 정파 헤즈볼라뿐 아니라 시리아, 예멘 후티반군 등 이란 지원을 받는 접경국에서 혼란을 틈탄 도발이 빈번해지고 있는 게 그 징후다.
헤즈볼라 수장 하산 나스랄라가 최근 이스라엘과 전면전에는 선을 그은 와중에, 5일 레바논 남부에서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어린이 3명 등 민간인 4명이 숨지는 사건도 일어났다. 중동에서 반(反)이스라엘 정서가 고조되며 긴장 수위는 계속 높아지고 있다. 무엇보다 이란이 개입하면 중동 전체가 전쟁터로 변할 공산이 크다.
전쟁이 장기화할수록, 시간은 결국 이스라엘의 편이다. IDF가 하마스를 군사력으로 압도할 게 자명한 탓이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도 또 다른 난제가 남는다. 가자지구의 ‘권력 공백’이다. 과도정부 설립이나 위임 통치 등 구체적인 향후 계획이 없다는 얘기다.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는 “이스라엘은 38년간의 점령 끝에 2005년 가자지구에서 철수했다”며 “하마스의 몰락 후 가자지구를 책임지고 싶지 않아 한다”고 짚었다.
미국이 제시하는 ‘두 국가 해법’이라는 큰 틀에서 팔레스타인자치정부(PA)가 가자지구를 책임질 유력 후보로 거론되긴 한다. 하지만 이 역시 “최선의 시나리오는 아니다”라는 게 FP의 분석이다. 오랜 부패와 무능으로 가자지구에서 민심을 잃은 PA가 이스라엘을 등에 업고 복귀하는 모습은 현지 주민은 물론, PA조차 원치 않는다. 또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파괴된 가자지구의 재건 자금을 어디서 끌어올 것인가도 숙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