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청소차 발판 사라진 뒤 환경미화원은 더 고되다

입력
2023.11.08 04:30
19면
[쓰레기 박사의 쓰레기 이야기]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청소차 발판 제거
대안 없는 조치에 노동강도·위험 늘어

편집자주

그러잖아도 심각했던 쓰레기 문제가 코로나19 이후 더욱 본격화하고 있습니다. 쓰레기 문제는 생태계 파괴뿐 아니라 주민 간, 지역 간, 나라 간 싸움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쓰레기 박사'의 눈으로 쓰레기 문제의 핵심과 해법을 짚어보려 합니다. '그건 쓰레기가 아니라고요', '지금 우리 곁의 쓰레기'의 저자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이 <한국일보>에 2주 단위로 수요일 연재합니다.

한 지자체 환경미화원분들을 상대로 강의를 가서 요즘 힘든 게 뭐냐고 질문을 던졌더니 수집운반 차량 발판을 없앤 것 때문에 불만이 쏟아져 나왔다. 수십 미터씩 이동하면서 조수석에 타고 내리느라 무릎과 다리가 너무 아프단다. 아예 차에 타지 않고 뛰어다니는 곳도 있다고 한다. 노동자 안전을 지키기 위한 조치가 탁상행정이라는 원성이 현장에서 나오고 있다.

쓰레기 수집차량 발판은 왜 없앴을까? 차량 뒤에 발판을 달고, 사람이 매달려서 달리는 것은 불법이기 때문이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으로 지자체장이나 청소업체 대표가 처벌을 받는 것도 부담이다.

발판에 매달려 다니는 것은 사고의 위험이 매우 높다. 미화원들이 발판에 제대로 올라가지도 않았는데 차가 출발하거나 급정거를 하게 되면 중심을 잃고 떨어질 수도 있다. 겨울철에는 발판이 미끄러워 더 위험하다. 뒤차와 충돌해 큰 사고가 날 수도 있다. 2015년 음주차량이 청소차를 덮쳐 두 명의 미화원이 다리를 잃는 비극적인 사고가 일어나기도 했다. 환경미화원 산재의 90%가 교통사고로 인한 골절이고, 5년 동안 29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자동차 배기가스 매연에 노출돼 폐암 등 질병의 위험도 높다.

상식적인 관점에서는 차량 뒤편 발판에 매달려 쓰레기를 수집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없애는 것이 맞다. 이런 이유로 환경부에서는 운전석과 적재함 사이에 쉽게 타고 내릴 수 있는 공간을 별도로 마련한 한국형 청소차를 개발해 보급 중이다. 불법 발판에 대한 단속도 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형 청소차 보급이 완료되지 않은 상태에서 발판만 제거하면서 현장에서는 오히려 노동 강도와 위험이 높아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2018년부터 2022년까지 한국형 청소차의 보급실적은 224대에 불과하다. 매년 50~70대 정도 보급되고 있는데 그나마 대전, 울산, 세종시는 실적이 없다. 2021년 기준 지자체 생활쓰레기 수집운반 차량이 1만5,000대인 것과 비교하면 한국형 청소차는 보급대수는 있으나 마나한 수치다.

차량 한 대당 수집해야 할 쓰레기양이 줄어든 것도 아니고 인원이 증가한 것도 아닌데 높이가 높은 청소차 조수석에 탔다 내렸다 하면서 쓰레기를 차에 실으면 할당된 양을 채우기 어렵다. 그러니 차에 타지 않고 그냥 차 뒤에서 뛰어다니거나 아니면 발판도 없는 상태에서 차 뒤에서 매달리는 더 위험한 선택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차 뒤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환경은 개선하지 않고 발판만 제거하면 어떻게 될까? 매달리면 안 된다고 교육도 했고 발판도 없앴는데, 차 뒤에 매달리는 선택을 한 것은 미화원 개인이기 때문에 사고가 나면 미화원 개인의 과실이 되는 것일까?

지자체 입장에서도 할 말은 있을 것이다. 인원을 늘리는 것도, 한국형 차량으로 조기에 교체하는 것도 모두 돈이 드는 일인데 빠듯한 청소재정 여건에서 쉽지 않을 것이다. 지금 개발된 차량은 너비가 넓어서 좁은 골목길에는 부적합하다는 지적도 있다.

어떤 대책이 필요할까? 한국 상황에 맞는 차량 개선도 좀 더 필요하다. 환경부가 좀 더 서둘러야 한다. 지자체는 종량제 봉투 가격을 올려서 차량교체 속도를 높여야 한다. 차량교체가 되기 전까지는 현장의견을 수렴해 좀 더 현실적인 안전 확보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