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이스라엘을 향해 ‘팔레스타인 민간인 희생을 최소화해야 한다’며 구체적인 전쟁 수행 방안까지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섬멸을 명분으로 가자지구에 무차별 공격을 퍼붓는 이스라엘의 ‘폭주’에 제동을 거는 듯한 모습이다.
이스라엘이 최대 맹방인 미국의 권고를 완전히 무시할 순 없겠지만, 당장 전쟁 방식을 바꿀 조짐은 없어 보인다. 팔레스타인 민간인 피해는 아랑곳없다는 듯, 이스라엘은 병원 구급차와 학교, 난민촌 등에 대한 표적 공격을 계속 이어갔다. 가자지구 사망자는 1만 명에 육박했다.
4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복수의 미국 고위 관리들을 인용해 “미국이 이스라엘에 민간인 사상자를 줄일 세부적인 조치를 비공개로 제안했다”고 보도했다. 전날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이스라엘 방문 때 해당 방안을 직접 제시했다는 것이다. 일시적 교전 중단 권고를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사실상 거부하자, ‘차선책’을 꺼내 든 것으로 풀이된다. 블링컨 장관은 4일 요르단 암만에서 중동 국가 외무장관들과 회담한 뒤 “이스라엘은 민간인 희생을 막기 위해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공개 압박을 가하기도 했다.
미국의 비공개 제안은 △소형 폭탄 사용 △하마스 지휘부 위치 정보 수집 지원 등으로 압축된다. 살상 반경이 좁은 소형탄을 활용해 하마스 조직원을 정밀 타격하라는 취지다. 일종의 ‘교전 수칙’으로도 비친다. NYT는 “가자지구 최대 난민촌 자발리아 공습으로 민간인 사망자가 급증한 데 따른 것”이라며 “(전쟁에 대한) 이스라엘의 접근 방식을 바꾸는 게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최우선 과제가 됐다”고 전했다. 미국 관리들은 “이스라엘 측에 작전과 관련, 좀 더 신중한 접근을 취하라고 조언해 왔다”고 신문에 말했다.
지난달 7일부터 2주 동안 이스라엘이 사용한 폭탄 90%는 1,000~2,000파운드(약 450~900㎏) 규모라고 미국은 본다. 일반적으로 미군이 쓰는 항공 폭탄(500파운드, 226㎏)의 2~4배 위력이다. 특히 이스라엘방위군(IDF)은 지난달 31일부터 사흘간 자발리아 난민촌에 2,000파운드 폭탄을 최소 2발 사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소규모 정밀 타격에 적합한 250파운드(약 110kg) 폭탄 활용은 2주간 전체 사용량의 10%에 그쳤다.
미국은 이스라엘의 이 같은 작전이 하마스 궤멸엔 비효율적이라고 판단한다. 미군 관계자들은 NYT에 “소형 폭탄이 가자지구의 밀집된 환경에 훨씬 더 적합하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민간인 살상에 대한 국제사회의 들끓는 비판도 감안했을 법하다. 아울러 미국은 드론과 위성, 첩보망을 활용해 하마스 지도부와 인질 230여 명의 위치 정보 수집도 강화할 방침이다.
이스라엘은 그러나 공격의 고삐를 늦출 의사가 없어 보인다.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4일 “하마스의 가자지구 지도자인 야히야 신와르를 찾아내 그를 제거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 3일 최소 2대의 병원 구급차를 표적 삼아 공격했고, 4일엔 자발리아 난민촌 학교와 가자지구 중부도시 데이르 알발라의 알마가지 난민촌에 폭탄을 퍼부었다. IDF는 “지상 작전 개시 후 일주일간 2,500여 개 목표물을 타격했다”고 밝혔다. 가자지구 보건부는 팔레스타인인 누적 사망자가 9,488명이라고 밝혔다. 하마스는 “이스라엘군 공습에 4주 동안 인질 60여 명이 숨졌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