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1일 국회 본회의.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체포동의안 가결 필요성을 설명하던 때, 낯선 용어인 '사법방해'가 등장했다.
한 장관은 이날 사법방해를 네 차례 언급했다. 이 대표가 △백현동 사업 관련 공무원들에게 특정 진술("국토부가 용도지역 변경을 협박했다")을 압박하고 △민주당 측에서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의 배우자를 회유했다는 점을 설명할 때 나온 표현이다.
검찰 수사나 공소유지(기소 이후 재판에서 유죄를 입증하고 적정 형량을 받아내는 과정)를 교묘하게 방해했다는 것인데, 이게 과연 죄가 되는 일일까? 현행 한국 법체계엔 사법방해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 법원이나 국회 진술이라면 위증죄나 위증교사죄를 적용할 수도 있겠지만, 정확히는 수사기관에서 이뤄지는 방해 행위를 처벌하는 규정은 없다는 얘기다.
애초 사법방해란 단어 자체가 미국 연방법 18장 73절의 'Obstruction of Justice'라는 제목을 번역한 것. 미국엔 있지만 한국엔 존재하지 않는 말이다. 이 사법방해죄를 요즘 법무부와 검찰이 부쩍 띄우고 있다. 한 장관은 올해 7월 민주당 의원들이 이 전 부지사 접견을 신청하고 수원지검장 면담을 요구하다 거부돼 연좌농성을 벌였을 때도 "권력을 악용한 최악의 사법방해"라고 지적했다. 그는 민주당이 당 대표 수사를 막기 위해 정치권력을 총동원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이는 '정치의 영역'이 아닌 '범죄의 영역'에 가깝다"고 비판했다.
검찰이 2년의 시간을 쏟아부은 '이재명 수사'를 계기로 주목받기 시작한 사법방해죄. 이게 도대체 무엇이기에, 최근 한 장관의 언급이 잦아진 것일까. 법무부와 검찰은 왜 사법방해죄 도입을 20년 이상 숙원사업으로 밀고 있는 걸까.
미국에서 사법방해죄는 법과 정의의 정당한 집행을 방해하는 일체의 행위를 범죄로 규정하고 처벌하는 것을 말한다. 특정한 범죄 형태가 규정된 것은 아니고, △좁게는 사법·수사기관의 업무를 물리적으로 방해하는 것부터 시작해 △허위진술이나 허위증거 제출 △넓게는 이런 방해를 유도하는 행위까지 아우르는 개념이다. 한국은 피의자가 자기 사건 증거를 없애는 것까지 처벌하진 않지만, 미국은 자기·타인을 가리지 않고 이런 행위를 금지한다.
사법방해는 한국에선 생소한 개념이지만, 미국에선 현직 대통령들의 정치적 명운을 좌우했을 만큼 중하게 다뤄지는 범죄다. 리처드 닉슨이 사임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사법방해 의혹이 사실로 드러났기 때문. 닉슨은 워터게이트 관련 수사를 고의로 지연시키고 수사과정에서 거짓말을 했으며 증거를 숨긴 사실이 밝혀져 하야했다. 미 의회의 빌 클린턴 탄핵 시도 역시 각종 성추문 사건 등에서 증인들에게 영향을 주려 했던 행위(사법방해) 때문에 시작됐다. '살림의 여왕' 마사 스튜어트, 메이저리그 단일시즌 최다홈런 기록 보유자 배리 본즈도 수사관이나 대배심(기소 여부를 결정하는 배심)에 거짓말을 한 혐의로 수사받은 적이 있다.
지금 법무부와 검찰이 들여오려는 사법방해죄 개념의 핵심은 ①수사 단계에서 ②참고인이 하는 ③허위진술이나 허위자료 제출을 처벌하도록 하는 것이다. 지금도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법정모욕죄, 범인은닉죄, 위증죄, 증거인멸·증거은닉죄, 무고죄 등이 사법방해 범주에 있지만, 수사 단계에서의 허위진술·허위증거 제출을 처벌하는 규정은 없다. 검찰이 이런 행위를 공무집행방해 등으로 기소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법원에선 유죄로 인정되지 않았다고 한다. 심지어 피의자나 참고인이 아닌 제3자가 계획적으로 피의자인 것처럼 수사기관에서 허위진술을 한 경우조차도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혐의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법원이 수사단계의 허위진술을 무죄로 본 이유는 '피의자와 수사기관은 대등·대립적 위치에서 서로 공격·방어를 할 수 있다'고 전제하기 때문이다. 피의자나 참고인이 수사기관에 진실을 말할 의무가 있다고 보기 어려우며, 실체적 진실을 발견할 의무는 수사기관에 있다고 보는 것이다. 결국 허위진술·자료가 통한다 하더라도 이는 수사기관이 충분히 수사하지 못한 결과일 뿐, 수사기관을 기망하려는 행위만으로는 죄를 물을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런 현실에 부딪힌 일선 검사들은 "참고인들의 거짓말과 피의자의 사주를 방치해선, 실체적 진실에 이를 수 없다"며 사법방해죄 도입 필요성을 호소한다. 수도권 검찰청의 한 부장검사는 "고소인과 피고소인의 진술이 엇갈릴 때, 보통 제3자인 참고인 진술에서 혐의 유무가 갈리곤 한다"면서 "이런 중요한 참고인을 피의자가 회유해 허위진술서를 내는 경우가 만연한데, 법조항이 없어 처벌할 수 없다"고 한탄했다.
수사기관에서 질문을 받는 이가 어떤 진술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정하는 법조항은 없다. 헌법 12조 2항에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않는다'는 진술거부권이 명시돼있을 뿐이다. 다른 부장검사는 "미국 연방 수정헌법도 (우리 헌법과) 비슷한 권리를 규정하지만, 미 연방대법원은 이것이 피의자와 참고인에게 '거짓말 할 특권'까지 부여하고 있진 않다고 본다"며 "묵비권을 넘어, 거짓말을 할 권리가 있는 것처럼 해석하는 건 부당하다"고 했다.
이재명 대표 수사가 불씨를 당기긴 했지만, 과거를 돌이켜보면 사법방해죄 도입은 법무·검찰의 숙원과제 중 하나였다. 법무부는 "처벌 공백이 실체적 진실 규명을 저해한다"며 2002년 형법·형사소송법 개정초안에 참고인 허위진술을 처벌하는 조항을 포함했지만 무산됐다. 2010년엔 선진 형사사법제도 도입 일환으로 정부안을 냈지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해 2012년 폐기됐다.
당시 정부안에는 '다른 사람이 형사처분을 받거나 면하게 할 목적으로 검·경에 범죄를 구성하는 중요한 사실에 관해 허위 진술을 한 사람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또 '형사사건에 관해 타인의 증언·진술을 방해하거나 허위증언·진술을 하게 할 목적으로 폭행·협박하거나 금품 등 재산상 이익을 약속·공여(의사표시 포함)한 사람은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규정도 넣었다. 유상범 국민의힘 의원 등이 지난해 7월 발의한 사법방해죄 도입안에도 비슷한 내용이 포함돼 있다.
그러나 법무·검찰이 20년 숙원인 사법방해죄 조항을 형법에 박기까지는, 법조계와 정치권의 반대라는 큰 산을 연이어 넘어야 한다. 검·경의 수사 편의만을 위해 참고인에게 특정 진술을 강요하기 위한 도구로 악용될 우려가 크다는 게 주요한 반대 이유다. 또 유무죄는 법정에서 나오는 자료만으로 판단되어야 한다는 '공판중심주의'에 반한다는 지적도 있다.
진술과 자료의 '허위' 여부를 정확히 어디까지로 봐야 할 것인가도 문제인데, 사실과 조금 다르다고 해서 검찰이 자의적으로 '허위성'을 규정하는 경우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피의자는 허위진술이 죄가 되지 않는데, 입건도 되지 않은 참고인에게만 처벌 조항을 부여하는 게 형평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