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방해·플리바게닝 들여오려면… "검찰 대국민 신뢰 전제돼야"

입력
2023.11.06 14:00
[학계·법조계가 보는 제도개선 방안]
진화하는 범죄, 위축된 수사 환경엔 공감
제도 필요성 있어도 국민 신뢰 없인 요원

편집자주

요즘 검찰발 기사나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발언에서 종종 언급되는 생소한 표현이 있죠. 바로 '사법방해죄'라는 개념인데요, 수사기관에서의 허위진술이나 허위자료 제출 등의 기망행위를 처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법무부와 검찰은 왜 한국 법체계에 없는 이 죄목을 도입하려는 걸까요? 사법방해 처벌이 가능해지면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까요? 한국일보가 해외 사례와 전문가들의 분석을 통해 자세히 살펴봤습니다.

보다 정의로운 세상을 구현하기 위해선 사법방해죄와 유죄협상제(플리바게닝) 및 사법협조자 형벌감면제의 도입이 필요하다며 군불을 때고 있는 법무부와 검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수사를 계기로 논의의 물꼬가 터진 두 제도를 둘러싼 논란은 앞으로 더욱 본격적으로 불거질 것으로 보인다.

여당과 정부가 대체적으로 도입에 찬성하는 가운데, 검찰권 확대에 반감이 큰 야당 쪽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어, 이 문제는 내년 4월 총선 결과에 따라 상당한 영향을 받게 될 것이 분명하다. 법조계와 학계에선 형사사법제도의 변화와 국제 기준을 고려한 '한국형 제도' 도입 논의가 필요하기는 하나, 실제 도입을 위해서는 '검찰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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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입 필요성엔 대체로 공감

수사 여건이 나빠진 반면, 범죄자들의 수법이 치밀하게 진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법방해죄와 플리바게닝의 도입이 필요할 수 있다'는 점에는 학계도 공감하는 분위기다. 허위진술과 허위증거 제출로 국가형사사법권이 침해받는 사건이 이어지고, 범죄의 실체적 진실을 가리는 행위가 적발됨에도 이를 처벌할 수 없는 문제가 실제 나타나고 있어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조서의 증거능력이 제한되고 공판중심주의로 나아가는 상황이라, 대다수 사건이 재판을 통해서만 처리돼 법원 단계에서의 사건 적체가 더욱 심해졌다는 점도 지적된다.

정웅석 한국형사소송법학회장은 "지난해부터 검사가 작성한 피의자 신문조서의 증거능력이 제한되고, 영상녹화조사는 법원에서 잘 인정되지 않는 상황"이라며 "뇌물 사건과 같이 물증이 마땅치 않고 진술이 중요한 사건에서 어떻게 대응 전략을 세울 수 있을지 논의가 필요하다"고 봤다. 익명을 요청한 다른 형법·형사소송법 연구자는 "사법방해죄는 법적 공백을 이용한 범죄들이 실제 일어나고 있단 점에서 필요하고, 플리바게닝은 재판의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단 점에서 분명히 논의할 시점은 맞다"고 말했다.

국제적인 흐름도 이런 제도를 인정하는 쪽이다. 미국·프랑스·독일·일본 등은 이미 자국에 적합한 방식으로 사법방해죄, 유죄협상제, 사법협조자 형벌감면제를 시행하고 있다. 한국이 가입한 유엔 부패방지협약(UNCAC)이나 유엔 초국가조직범죄방지협약(UNTOC) 등이 사법방해자 처벌, 범죄 관련 수사·기소에 협력한 사람에 대한 소추 면책 또는 형벌 감경 제도 검토를 의무화하고 있어 기준에 부합하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결국 핵심은 검찰 신뢰 여부

다만 이런 제도들이 결국엔 검찰의 '편의'를 늘려주는 쪽으로 활용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또 다른 형태의 검찰권 강화 조치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한국일보 취재에 응한 여러 법조인들은 "검찰을 믿지 못하는 현상 때문에, 제도가 필요한 상황에도 번번이 입법 시도에 실패한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김희균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제적으로 도입은 불가피하나, 국민이 검사 결정을 얼마나 신뢰하는지가 제도 도입에 가장 중요한 요소"라며 "검사 작성 피의자신문조서가 본래 경찰 것과 달리 증거능력이 있었던 건 당시엔 '검사는 경찰과는 다르다'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이어 "작은 사건부터 공정한 결정을 내리는 모습으로 점차 국민 인식을 바꿔 제도를 도입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일이 병행·선행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검찰 출신 한 변호사 또한 검찰에 대한 신뢰를 전제 조건으로 짚었다. 그는 "수사 환경이 안 좋아졌단 검찰 얘기도 이해는 가지만 수사력을 높이려는 노력이 있었는지, 준사법기관으로서 국민에 서비스를 제공할 자세가 됐는지를 돌아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사건 처리 지연, 일관성 없는 사건 처리, 직접수사와 권력형 비리 사건에의 집착, 이로 인한 인력의 왜곡된 운용 탓에 신뢰가 깨진 부분에 대한 반성은 해야 한다"고 일침을 놓았다.

도입시 나올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제언도 나왔다. 검·경 수사권 조정 등 형사사법제도의 급격한 변화가 시민에 피해를 줬던 전례에 비춰, 토론은 치열하게 하되 도입은 점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정웅석 회장은 "일부 범죄로 한정해 운영하면서 차차 보완점을 찾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며 "유죄협상제나 사법협조자 형벌감면제의 경우 검사가 불기소 처분한 것에 문제가 있으면 재정신청을 할 수 있도록 법원 통제장치를 두는 것도 고려할 만 하다"고 덧붙였다.

이유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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