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벽과 도박, 약물 남용 위험이 높은 ‘경계성 인격장애(Borderline Personality Disorder)’로 진단받고 치료받는 환자가 1만 명당 1명꼴인 것으로 나타났다. 남성보다 여성의 발병률이 높았으며, 20대에서 가장 많았다.
석정호 강남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팀이 국민건강보험공단 데이터베이스의 2010~2019년 맞춤형 데이터를 활용해 조사한 결과다. 국내에서 경계성 인격장애의 실제 발병률과 임상적 특성에 대해 체계적으로 시행한 연구는 이번이 처음이다. 연구 결과는 ‘연세의학저널(Yonsei Medical Journal)’에 게재됐다.
경계성 인격장애는 정서적 불안과 자아 정체성 문제 등을 포함해 다양한 증상을 보이는 복합 인격장애를 말한다. 권태감과 공허감이 만성적으로 나타나며 대인관계가 불안정한 특징도 보인다.
또한 자제력이 부족해 도벽·도박·약물 남용 등 충동적인 행동 양상을 보이고, 환자의 60~80%가 자살을 시도한 경험이 있다고 보고된 바도 있다. 어린 시절에 유기·분리·학대 경험이 경계성 인격장애를 형성하는 데 기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정엽 광화문숲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경계성 인격장애 환자의 뇌를 자기공명영상(MRI) 촬영하면 뇌 속 감정 제어·충동 조절 영역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연구 결과, 경계성 인격장애로 진단된 환자는 2010년 3,756명에서 2019년 4,538명으로 1.2배가량 늘었다. 2019년 기준으로 경계성 인격장애 환자는 1만 명당 1.06명꼴(4,538명)로 진단·치료를 받은 셈이다.
남성 환자 유병률은 2010년 0.81명에서 2019년 0.80명으로 큰 변화를 보이지 않았지만, 여성 환자 유병률은 같은 기간 1.12명에서 1.32명으로 증가했고 발병률도 더 높았다.
경계성 인격장애 유병률이 가장 높은 연령층은 20대로, 나이가 들면서 유병률은 낮아지는 추세를 나타냈다.
지역별로는 서울 지역 유병률이 1만 명당 8.71명으로 가장 높았고, 대전(6.62명)과 대구(5.90명)가 뒤를 이었다.
해외의 경계성 인격장애 유병률이 2.7~5.9%인 것에 비해 국내 유병률이 크게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국내의 경계성 인격장애 유병률이 현저히 낮은 것을 긍정적으로 볼 수 없다. 병을 제대로 치료하지 않고 ‘숨어 있는 환자’가 많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석정호 교수는 “건강보험 청구 자료 특성을 고려하더라도 경계성 인격장애의 낮은 국내 유병률은 임상 현장에서 경계성 인격장애가 매우 낮은 비율로 진단되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했다. 석 교수는 “국제적 연구 흐름에 맞춘 진단율 향상과 치료 프로그램 개발은 물론, 경계성 인격장애가 자살 위험성과 의료적 부담이 큰 질병이라는 점을 고려해 정부 차원의 인식 제고와 제도 개선, 예산 확충 등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