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던 유대계 혐오, 전쟁으로 뚜껑 열렸다… "역사적 수준"

입력
2023.11.01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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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예고에 수업 취소, 회당 폐쇄
건물에 '다윗의 별' 낙서도 등장
"반유대 위협, 역사적 수준 도달"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전쟁이 시작된 후 유대인을 향한 세계 곳곳의 혐오 범죄 증가세가 “역사적인 수준”에 도달하고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이스라엘의 비인도적 보복 공격으로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이 학살당하는 데 대한 반작용이다.

홀로코스트(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 이후 서방의 유대인 혐오는 노골적으로 표출되지 않았지만, 이번 전쟁이 금기를 깨는 모양새다. '인종 범죄는 안 된다'는 합의가 무너지고 극단주의와 폭력의 시대가 다시 올 것이라는 우려가 커졌다.

전 세계서 범죄 폭증… 혐오가 거리로 나왔다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크리스토퍼 레이 미국 연방수사국(FBI) 국장은 이날 상원 청문회에서 “유대인 공동체는 거의 모든 테러리스트 집단의 표적이 되고 있다”며 “역사적인 수준에 도달하는 위협”이라고 진단했다.

유대인 혐오 정서는 전쟁 전에도 있었다. 레이 국장은 지난해 미국 내 종교 기반 혐오 범죄 중 60%가 유대인이 대상이었다고 공개했다. 미국 인구의 2.4%에 불과한 유대인이 혐오 범죄의 집중 표적이 된 것이다. 미국의 유대인 단체 반명예훼손연맹(ADL)도 지난 5월 "영국, 스페인 등 유럽 10개국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4명 중 1명꼴로 유대인에 대한 부정적 견해를 갖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발표했다.

전쟁은 혐오 범죄의 버튼을 눌렀다. ADL에 따르면, 전쟁이 시작된 지난달 7일부터 23일까지 미국에서 312건의 반유대주의 행위가 적발됐다. 미국 연방 검찰은 미국 코넬대 온라인 게시판에 "유대계 식당을 총격하겠다"는 글을 올린 재학생 패트릭 다이(21)를 31일 기소했다.

미국 CNN방송은 “미국의 유대인 학교들은 수업을 취소하고 유대인 회당은 문을 잠갔다. (홀로코스트라는) 역사적 트라우마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유대 사회는 또다시 언제 어디에서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을지 의문을 갖게 됐다”고 짚었다.

파리에 홀로코스트 상징 '다윗의 별' 등장

미국만이 아니다. 로이터통신은 영국에서 지난달 7일 이후 반유대주의 사건이 14배 증가했고, 독일에선 지난달 7일부터 일주일간 유대인 혐오 범죄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4배 늘었다고 보도했다. 프랑스에서는 지난달 30일까지 반유대인 범죄가 819건 발생해 지난해 1년간 집계된 건수(436명)보다 많았으며,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에서도 유대인 공동체가 위협받고 있다.

31일 프랑스 파리 14구의 아파트와 은행 건물 외벽에 홀로코스트의 상징인 ‘다윗의 별’이 약 60개 그려진 것으로 확인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마이클 오플라허티 유럽연합(EU) 기본권리기구(FRA) 국장은 영국 가디언에 “코로나 19 팬데믹 기간이나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벌어졌을 때도 유대인 혐오 범죄가 발생했다. 사회에 부정적인 문제가 생기면 반유대주의적인 수사와 행동이 등장하는 것이 패턴"이라고 말했다. CNN은 "이번 유대인 혐오 범죄는 미국과 서유럽의 안정과 민주주의를 위협해 온 폭력에서 싹튼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