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다시 기지개를 켜고 있다. 불명예 퇴장과 연달아 징계를 받은 이후 꽤 긴 시간 잠잠했다. 이후 '천아용인'(천하람·허은아·김용태·이기인)을 내세워 전당대회의 판을 흔들더니 더 나아가 이제는 활발하게 독자적인 플레이를 이어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을 향한 강한 쓴소리와 김기현 지도부와 친윤 주류 세력을 향한 비판은 날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 이 전 대표의 목소리가 점점 더 크게 소환되는 이유는 그만큼 윤석열 정부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 전 대표의 말에 권력을 부여해주는 것은 언론이 아니다. 윤 대통령을 비롯한 친윤세력들이 만들어낸 이 기이하고 수직적인 구조가 이슈의 주도권을 이 전 대표에게 부여해주고 있다. 즉 이 전 대표의 선거운동을 돕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변하지 않는 윤 대통령과 친윤세력 그리고 친윤세력이 되고자 하는 이들의 급발진으로 보인다. ‘내부총질하는 당대표’라는 윤 대통령의 메시지부터 최근에는 안철수 의원발 이준석 제명운동, 인요한 혁신위원장발 대사면 이슈 모두 이 전 대표의 입에 집중하게 만드는 결과를 불러왔다. 역설적이게도 반이준석 세력 덕에 이 전 대표는 무대 뒤편에서 무대 위로 완전히 올라섰다. 이 전 대표에게 다음 총선의 의미는 남다를 것이다. 10년간 다양한 방식으로 살아남았지만, 결국 정치를 한다는 것은 국회의원이 되어 선출된 권력에 부여되는 권한을 활용해 보여주는 정치가 ‘진짜 정치’임을 그도 모르지 않을 터다. 시나리오는 세 가지다. 노원병에서 국민의힘 후보로 또다시 공천받을 것인가, 탈당을 하고 이준석 신당을 만들 것인가, 무소속으로 대구에 출마할 것인가.
이 전 대표는 어떤 선택지에 대해서도 선을 긋지 않고 있다. 모든 걸 고려한다는 뉘앙스와 함께 대통령의 국정운영기조에 제대로 된 확실한 변화가 없으면 본인도 별 수 없다는 식의 명분을 계속 축적해가고 있다. 이 전 대표는 급할 것이 없다. 선택지를 정해 가능성을 차단해 봤자 이슈는 금세 정리되고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질 게 뻔하다. 가장 좋은 건 어떤 선택지든 살려두고 시시각각 변하는 정치권의 흐름에 맞춰 그때그때 다양한 반응을 내놓으며 관심으로부터 멀어지지 않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전 대표가 신당을 만드는 선택을 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보다는 보수의 심장을 독자적으로 겨냥하는 행보를 보이지 않을까. 이 전 대표는 당을 만드는 작업에 이미 한번 참여해 본 사람이다. 국민의힘으로 흡수되는 과정도 거쳤다. 결국 본류가 바뀌지 않는 상태에서 새로운 지류를 만들어 나가도 다시 본류로 돌아와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국민의힘 후보로 공천받는 게 과연 가능할까? 이미 쌓여있는 감정의 골이 깊어져있다. 특히 대통령의 허락이 떨어지느냐가 관건일 텐데, 윤 대통령과 이 전 대표는 앙숙이라는 말보다 더 깊은 갈등의 골을 품고 있지 않은가. 강서구청장 재보궐 선거에서 무공천 기류를 바꿔 갑자기 김태우 후보를 공천한 국민의힘의 모습을 보면, 정치적인 의사결정에서 용산과 당의 관계를 여실히 드러냈다. 결국 김기현 지도부나 윤핵관이 이 전 대표와 화해하느냐, 인 위원장이 죄사함의 은혜를 베푸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윤 대통령과 이 전 대표가 다시 마주할 수 있느냐가 핵심이다.
정치인은 대의명분과 권력의지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할 순간이 있다. 정치인이라면 모름지기 명분이 있어야 하며, 권력의지는 정치인의 전제 조건이다. 대의명분과 권력의지가 같은 방향을 향한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정치인은 선택을 통해 자신의 결정을 유권자에게 설득한다.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다.
소선구제라는 제도적 특성을 감안할 때 현실 정치에서 선거는 최선의 선택을 하기보다 최악을 피하는 형태로 존재하기도 했다. 유권자에게 보다 나은 가치를 제시하며 최선의 선택을 유도하는 것이 이상적이겠지만, 막상 선거가 시작하면 상대를 악마화해 최악을 피하고자 하는 전략을 취할 때가 많다. 그런 의미에서 선거 전략상 최악을 상정하고 이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의 선거연합 구도는 자주 있었다.
내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이른바 비명계 의원들의 행보가 선거의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총선이 약 160여 일 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비명계 의원들이 탈당을 하거나 독자행동을 할 가능성에 대해 많이 묻는다. 생물이라 불리는 복잡한 정치 상황 속에서 이를 섣불리 예단하기는 어렵지만, 2003년 7월 이른바 독수리 오형제의 한나라당 탈당을 예로 들고자 한다. 당시는 노무현 정권 시절 국민의힘의 전신인 한나라당이 야당이었고, ‘독수리 오형제’라 불렸던 김부겸 전 의원, 김영춘 전 의원, 안영근 전 의원, 이부영 전 의원, 이우재 전 의원이 야당을 탈당했다. 2004년 17대 총선을 약 280여 일 남겨둔 시점이었다. 탈당 당시 상황은 2002년 대선에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후보에게 패배했고, 한나라당은 최병렬 대표가 선출되었다.
독수리 오형제가 탈당한 배경에 여러 가지 해석이 있지만, 한나라당의 정파 구도를 꼽을 수 있다. 한나라당은 이른바 3자 합당을 통해 만들어진 민주자유당과 민주당의 합당을 통해 창당했었고, 최 대표는 민정당 출신이었다. 탈당한 이들 중 일부는 한나라당이 당의 다원성을 잃고 도로 민정당이 되었기 때문에 탈당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독수리 오형제는 2003년 7월 한나라당 탈당 기자회견에서 “지역주의와 냉전적 이분법을 넘겠다”고 강조했고, 당시 한 언론 인터뷰에서 “집권자의 임기에 따라 부침을 거듭하는 정당이 아닌, 국민과 함께 전진하는 정당을 만들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후 이들은 통합연대를 결성했고, 새천년민주당을 탈당한 인사들과 열린우리당을 창당하는 등 이들의 명분과 권력의지에 대한 선택은 대한민국 현대사에 족적을 남겼다.
대통령 중심제의 한국 정치에서 대통령과 여당이 갖는 권력 구조와 소선구제라는 선거제의 정치적 특성을 고려해 볼 때 야당에서 비주류 의원들의 독자행동은 그들의 권력의지에 따라 가능할 수도 있다고 본다. 특히 다른 합리적인 목소리를 인정하지 않고 오직 친명 색채가 강해진 더불어민주당에서 아직도 이재명 대표의 체포동의안 가결표를 던졌다고 의심하는 몇몇 의원의 징계 여부를 두고 갈등을 이어오는 상황과 개인 비리 의혹으로 기소된 야당 대표의 현실을 고려할 때 비명계 의원들의 선택의 여지는 남아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