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식과 구토 오간 여자들의 기록…"이것도 삶이다"

입력
2023.11.04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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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식장애 당사자의 '정상성' 투쟁기 책 '이것도 제 삶입니다'
여자에서 여자로 이어진 성별화된 질병, 섭식장애 이야기

거식증과 폭식증 등 섭식장애에 대한 인식은 대체로 편협하고 부정적이다. '다이어트에 미친 여자들의 부작용', '복에 겨운 귀족병' 등 섭식장애 당사자의 의지 문제로만 바라본다.

하지만 인생의 절반인 15년간 섭식장애를 앓아 온 박채영(30)의 책 '이것도 제 삶입니다'를 읽다보면 이런 편견은 깨진다. 채영이 밥을 처음 남긴 건 엄마로부터의 독립 선언이었다. '이혼녀'이자 '워킹맘'이던 엄마와 늘 떨어져 자라야 했던 채영에게 '밥을 거부하는 행위'는 엄마의 사랑을 확인할 방법처럼 느껴졌다. 밥을 잘 먹는 아이에게 관심을 쏟는 어른은 없으니, 저자의 말마따나 "엄마를 당황시키고 싶었다"는 것.

저자는 상처를 거슬러 올라가며 주변 여자들의 아픔을 발견한다. 1990년대를 싱글맘으로 헤쳐나간 엄마 상옥의 삶을 보자. 상옥은 폭력적인 남편과 가부장적인 사회 속에서 혼자 딸을 키워냈다. 그러면서도 딸에게 "혼자 밤에 다니지 말라", "옷매무새를 잘하라"는 말밖에 할 줄 몰랐던 여성이었다. 치매를 앓는 시어머니와 당뇨를 앓는 남편을 평생 돌본 외할머니 금주는 평생 이유 모를 구토에 시달렸다.

책은 이들이 소화시키지 못하고 게워낸 것이 그저 음식이었을 뿐인가를 묻는다. 여성에서 여성으로 이어지는, 성별화된 섭식장애의 사회·구조적 원인을 고민하게 된다. 결국 우리 몸은 수많은 사람의 관계가 담긴 결과로써의 몸이기에.

그래서 책은 투병기가 아닌 '정상성'과 싸우는 투쟁기처럼 읽힌다. 저자는 최근 영화 '두 사람을 위한 식탁'으로도 경험을 나눴다. 여전히 폭식과 구토로 흔들리는 삶이지만, 자신의 이야기가 다른 누군가의 상처와 맞닿기를 바라는 마음에 용기를 낸 셈이다.



이근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