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 선수단장 “스포츠 엘리트는 키우는 게 아니라 발굴… 1인 1기 필요”

입력
2023.11.16 15:30
5면
[K스포츠의 추락, J스포츠의 비상] 
<4> 일본 스포츠 '퀀텀점프' 비결
'재일동포 3세' 일본 탄탄한 저변 몸소 경험 
"학교 체육은 인성 교육… 사회 생활에 도움"
'공부하는 운동선수' 나오도록 기회 늘려야
"스포츠 해본 사람 많아지면 후원도 늘 것"

편집자주

한국 스포츠, 어떻게 기억하나요?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크게 도약한 우리 스포츠는 국민들에게 힘과 위로를 줬습니다. 하지만 저력의 K스포츠가 위기에 섰습니다. 프로 리그가 있는 종목조차 선수가 없어 존망을 걱정합니다. 반면, 라이벌 일본은 호성적을 거두며 멀찍이 달아났습니다. 희비가 엇갈린 양국 스포츠 현실을 취재해 재도약의 해법을 찾아봤습니다.

지난달 막을 내린 항저우 아시안게임 대한민국 선수단장으로 현장을 부지런히 누빈 최윤(60) OK금융그룹 회장은 스포츠를 잘 아는 사업가다. 재일동포 3세로 일본 나고야에서 태어나고 자라 중학교 때는 축구를, 고등학교 때는 럭비를 했다. 그는 일본 중고교에 자리 잡은 부카츠(部活·부활동)를 통해 자신이 좋아하는 종목 선수로 직접 뛰었으며, 현재는 남자 배구단을 운영하고 있다.

최 회장은 일본에 탄탄하게 뿌리내린 생활체육을 몸소 경험했기에 일본 스포츠의 성장세와 잠재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러면서 여전히 엘리트 체육 위주로 돌아가는 한국도 이제는 확 바뀔 때가 됐다고 진단했다. 저출생으로 선수 자체가 부족하기 때문에 엘리트와 생활 스포츠 구분 없이 저변을 확대하는 게 시급하다는 것이다.

최 회장은 최근 OK금융그룹 집무실에서 한국일보와 만나 “생활체육이 탄탄해야 엘리트와 프로스포츠도 경쟁력이 생긴다”며 “스포츠가 생활화되면 관련 산업도 발전할 수 있어 '1석 2조' 효과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스포츠 저변 확대를 위한 방안으로 ‘1인 1기’(학생 1인당 1개 이상의 스포츠·예술 활동 참여)를 제안했다. 최 회장은 “엘리트 선수는 키우는 게 아니라 1인 1기 또는 2기를 실천해 숨겨진 재능을 발굴하는 것”이라며 “한국에선 지금까지 공부하는 사람과 운동하는 사람을 구분했지만, 이제는 '공부하는 운동선수'가 나오도록 아이들에게 다양한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에선 본인이 하고 싶어서 또는 잘하고 싶어서 운동하는데, 우리나라에선 부모가 원해서 또는 지도자가 시키는 대로 퇴로 없이 운동에만 매달린다며 안타까워했다. 최 회장은 "스포츠를 접한 학생이 잘하면 기회를 더 주고, 그게 아니라면 공부하면서 즐기도록 하면 된다"고 밝혔다.

일본처럼 학교 체육을 인성 교육 차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도 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스포츠를 배우면 규칙 안에서 경쟁하고 남을 배려하는 법을 배우고 승패를 떠나 친구가 된다는 걸 몸소 익힐 수 있다”며 “많은 선진국들이 학교 체육을 통해 스포츠를 생활화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최 회장은 학창 시절 스포츠를 경험하면 직장 생활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 대학에서 럭비 선수 출신이 연간 6,000명 정도 졸업하는데, 이들의 취업률이 90%에 달한다. 럭비를 통해 사회생활에 필요한 교육을 충분히 받았다는 인식이 크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직장에서 선호하는 인기 1순위는 스포츠 팀에서 리더 역할을 한 주장이고, 2순위는 빛나지 않아도 뒤에서 궂은 일을 했던 매니저 출신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최근 영향력이 커진 E스포츠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E스포츠는 경기마다 만원 관중이었고, 티켓값도 가장 비쌌다. 최 회장은 “현장에서 지켜보니 E스포츠의 인기가 정말 대단했다”며 “게임을 해보지 않은 세대가 거의 없지 않나. 사람들이 많이 해봤으니까 관심도 크고, 팬도 많고, 산업도 커진 것”이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최 회장은 일본에서 스포츠 선수가 존경의 대상이 되는 이유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부분 학생들이 운동을 했기 때문에 스포츠 선수들이 얼마나 노력해서 그 자리까지 갔는지 잘 알고 있다”며 “기업인들도 어릴 때부터 스포츠를 접해서 국가대표에 대한 존경심이 있고 후원을 많이 한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그러면서 "우리나라도 학교에서 스포츠를 해본 사람들이 여러 분야에 진출하면 긍정적 효과가 생길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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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