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어린이집과 유치원, 초·중·고교 상당수가 이용하는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의 급식시스템이 영업정지 처분받은 업체를 제대로 걸러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식재료의 유통기한을 부실하게 관리한 업체가 버젓이 아이들의 먹거리를 납품한 것이다.
31일 감사원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영업정지 기간이거나 과징금·과태료로 행정처분을 받아 급식시스템을 이용할 수 없는 업체 47곳이 전국 학교 등과 식자재 납품 계약을 체결한 건수는 675건, 액수는 102억여 원에 달한다. 특히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을 판매해 지난해 10월 서울 중랑구청으로부터 영업정지 처분을 받은 A업체는 시스템 이용정지 제재 기간 3개월 동안 93건의 납품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 금액은 18억여 원이다. 경기 시흥시청으로부터 2019년부터 연달아 3차례 영업정지 처분을 받은 B업체는 매번 이를 무시하고 총 133건, 31억4,000만 원의 계약을 체결했다. 이들 업체는 사실상 영업정지 처분을 받고도 정상 영업을 한 셈이다.
이처럼 행정 처분을 받은 업체들이 평소처럼 학교 등과 계약을 체결할 수 있었던 건 후진적인 aT의 부적격 업체 관리 체계 때문이다. 지방자치단체로부터 행정처분을 받은 업체 정보가 자동으로 급식시스템에 반영되는 구조가 아니라, aT가 수작업으로 전달받은 행정처분 내역과 시스템에 등록된 업체 정보를 확인해 입력하는 방식이다. 이번에 감사원에 적발된 47개 업체 모두 aT가 행정처분 내역을 급식시스템에 제대로 입력하지 않은 탓에 학교 등은 해당 업체의 법 위반 사실을 알지 못하고 계약을 체결했다.
aT 급식시스템은 전국 1만1,976개 초중고 중 78.5%인 9,407개 학교와 유치원·어린이집 1,123개 기관이 이용할 정도로 보편화돼 있다. 지난해 급식시스템을 통한 거래 실적은 3조4,199억 원에 이른다.
이에 감사원은 aT 사장에게 식품 관련 법률을 위반한 식자재 공급 업체의 행정처분 내역이 급식시스템에 자동으로 연계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한편 이용 정지 대상 업체 제재 업무를 철저히 하라고 주의조치를 내렸다.
감사원은 농수산물 가격 안정을 위해 실시하는 aT의 수매비축 또한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져 손실이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aT는 수매비축분 구매 시 매달 발표하는 실제 작황 결과가 있음에도 수급 부족 시기 3개월 전에 작성된 예측 생산량 자료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 결과 필요 이상으로 수매한 배추, 무, 양파 3만여 톤을 폐기해 273억 원의 손실을 끼쳤다는 게 감사원의 판단이다.
농림축산식품부도 도마에 올랐다. 농림부는 지난 2021년 조류 독감 확산에 따른 계란 파동이 안정화되는 상황임을 알고서도 신선란 1억여 개를 추가 수입했다. 결국 이 중 2,125만 개는 지난해 1월 유통기한을 넘겨 폐기됐다.